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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사 Nov 19. 2020

스마트스토어와 흑자부도

빛 좋은 개살구


올해 3월. 스마트 스토어를 개설했다. 사업자를 내고, 통신판매업 신고를 하고,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 자체로 아구가 당기는 설렘이다. 처음엔 블로그 마켓으로 시작했다. 바닥부터 시작하는 사업자들의 가장 큰 과제는 마케팅이다. 좋은 물건을 내놔도 노출이 안되면 그게 있는지 없는지 소비자가 알 길이 없다. 이미 인플루언서 이거나 많은 이웃을 보유한 파워블로거라면 마케팅이 한결 수월하겠지만, 가진건 뜬구름 같은 열정뿐인 회사원 투잡러는 어디가 시작점 인지도 모르게 밑바닥부터 두드려야 한다. 이런 실상이니 블로그 마켓 2개월 동안 손에 떨어지는 건 만 원쯤 됐나. 거창하게 만들어놓은 장부가 머쓱해했다. 에라 안 되겠다 싶어 3월 초 급하게 스토어를 개설했다.


하늘색 그래프는 수줍은가 봐요


1. 아이템 선정에 대한 의심

용돈이나 벌고자 시작한 스토어 때문에 사업장을 따로 둘 여유는 없으니 원룸 안에서도 충분히 촬영하고 작업할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했다.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는 실버와 14k 제품이 좋겠다. 2,30대 중후반 이후의 여성, 혹은 그들의 남자 친구를 타깃으로 정하고 마진율은 최저로 낮췄다. 소비자들이 직접 발품 팔아 사는 수고를 덜어주고, 좋은 제품을 골라 상세정보와 사진을 제공하고 받는 심부름 값 정도 된다. 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스토어를 시작한 사람들이 죄다 비슷한 아이템을 사입해 팔 테니, 결국 마케팅 싸움이고 가격전쟁이다. 3월부터 7월까지 매 달 한 개씩 팔았다. 3개월쯤 지나자 난 뭘 해도 안 되나 회의감이 들었다. 어차피 안 팔릴 것을 알지만 신상은 업데이트 해야한다. 한 두개 팔아 마진을 남겨도 샘플 값 빼기도 빠듯하다. 기업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이쯤 되니 좀 더 저렴한 샘플로 눈이 간다. 한두 개만 팔아도 샘플비는 뽑을 수 있는 써지컬이나, 현재 아이템의 도매가면 열 개 남짓 사서 쟁여둘 수 있는 액세서리를 해볼까. 아이템 선정에 대한 의심에 숱 없는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밤이 깊도록 한숨을 쉰다. 왜 장사 안 되는 식당들이 메뉴를 수만 가지 늘리는지 공감되는 순간이 온다. 맛집의 메뉴 통일처럼 스토어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기대를 버리고 그러려니 하는 마인드로 지내던 8월 말쯤. 별다른 홍보 없이 매출이 수직 상승했다. 그래 봐야 손익분기점은 조선시대 달나라 가듯 까마득하지만, 꽤 좋은 후기들을 보며 돈 주고도 경험할 수 없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게 설렘을 느꼈다.


시험 볼 때도 늘 답을 고쳐서 틀렸다. 흔들리지 말고 처음 한 선택을 믿고 나가면 중간은 가는 것 같다. 11월 판매량은 현재까지 총 네 건. 커피 한 잔 값은 벌었으니 그걸로 됐다.


2. 흑자부도를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스토어의 구조

흑자부도를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 스토어의 구조를 얕게 이야기해보자. 소비자가 최종 결제를 하면 배송 절차가 시작된다. 당장 가지고 있는 재고가 없으면 도매 시장에서 사입해 오는 기간이 포함된다. 상품이 준비되어 포장을 하고 배송처리를 한다. 공휴일이 길게 물린 소위 '택배 대목' 에는 그 기간이 평소보다 길어진다. 물건을 받은 고객이 구매확정을 누르면 (누르지 않으면 자동 확정이 된 이후)  그다음 날, 혹은 그 이튿날 각종 스토어 수수료를 뗀 정산금이 들어온다. 이 과정이 짧게는 2일, 길게는 일주일 동안 이루어진다.


운수 좋은 날처럼 극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도매가가 10만 원인 물건을 파는 스토어가 있다. 당장에 백만 원의 자본금이 있으니 대 여섯 개의 발주 정도는 늦은 정산에도 끄떡없다. 그러던 어느 날, 조상의 보살핌인지 밤새 주문이 폭주해 하루아침에 20개의 발주량을 해내야 한다. 스마트 스토어의 정산 시스템은 현금 흐름이 썩 원활하지 않다. 결국 모자란 열 개만큼의 대출을 받기로 한다. 부채가 늘었다. 정성껏 포장하여 각 소비자에게 배송을 했다. 당장 백만 원의 부채가 있지만, 스토어 정산만 된다면 부채를 얼른 상환하고 순이익이 남을 거란 달달한 꿈도 꿔본다. 삼일 뒤, 스무 명 중 일곱 명이 반품을 요청했다. 열 명은 아직 구매 확정을 하지 않았고, 나머지 세 명 분의 정산금은 내일 입금될 예정이다.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아직 확정하지 않은 열 명 중에도 반품을 요청하는 고객이 나타날 수 있다. 이 와중에 추가 주문이 들어오고, 당장 정산된 돈이 없으면 또다시 대출을 받게 된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니 대출 이자 나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악순환이다. 주문은 꾸준한데, 정산이 늦으니 당장 물건 살 돈이 없다. 그러니 대출은 점점 늘어가고, 마진으로 얻은 돈은 대출 이자 갚으면 없다. 흑자부도다.


이런 정산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첫째, 메인 잡이 있어야 한다. 고정적으로 입금되는 주된 수입원이 있다면 엄청난 주문량이 아니고서야 흑자부도는 면할 수 있다. 둘째, 자체 제작 상품으로 단가를 낮추고 큰 마진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을 팔아야 한다. 입고 지연으로 인한 페널티, 재고 수급 등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스토어를 근 9개월 동안 유지해 보니, 메인 잡이 있는 게 이렇게 감사할 수 없다. 자수성가로 기업을 키워내신 대표님 뒤에서 후광이 보인다. 내가 가진 아이템이 엄청난 것 같아도 어쩌면 아닐 수 있다. 아닐 확률이 더 높다. 그러니 당장 뭔가 반짝한다고 해서 사직서 내고 뛰쳐나오려는 결단력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단단히 채워 두자. 브레이크가 풀려 뛰쳐나오게 되면 기다리는 건 흑자부도다.


3. 떫디 떫은 근자감

괜찮은 상품을 선택해서 사진만 잘 찍어 올리면 부자 될 줄 알았던 오만과, 잘 되는 스토어에서 구경했던 저런 게 팔릴까 싶은 것들에 대한 편견이 발주빈곤으로 인도했다. 경영학과 4 년 내내 징그럽게 피해 다녔던 그놈의 마케팅이 처음으로 절실했다. 어그로를 끄는 버즈마케팅도 어느 정도 사람들의 관심사 안의 인물이어야 가능하다. 자체 제작을 하기엔 큰 재능도 없거니와, 자본도 없거니와, 메인 잡과 병행할 체력 혹은 시간적 여유도 없다.


대표는 근사할 줄 알았건만, 결국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의 연장선이다. 흑자부도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발주량을 툭툭 쳐내며 커피값이나 벌고 있다. 신상만 들여오지 않으면 현상유지는 된다. 아마 삼십 평생 먹어본 감 중에 가장 떫은 감은 근자감인 것 같다. 떫다고 퉤 뱉어버릴 수도 없으니 어서 씹어 넘기는 수밖에.  


원가 빼면 시체


4. 스토어를 시작하려는 회사원이자 예비 대표님들께

세상은 넓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지금 생각하는 거에 두 배 정도 곱해서 생각하시면 얼추 맞습니다. "왜 이걸 안 사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대부분은 "사지 말아야지"라는 큰 전제 위에서 쇼핑을 하고, 그 와중에 한 개라도 내 아이템을 사주는 소비자가 있다면 기적입니다. 상처 받지 마시고 호기롭게 시작하는 그 기세 자체를 사랑하세요. 당장 회사가 싫어서 도피하듯 시작하지 마세요. 마데카솔인 줄 알고 발랐는데 고추냉이일 수도 있습니다. 응원합니다 예비 대표님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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