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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필름 Nov 08. 2021

D-1 | 나는 글을 써야만 했습니다


문득 인생을 돌아 보니 비극만 남아서, 에세이를 썼다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드디어 내일 출간됩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뜻 모를 호의를 정말 많이 받았다고. 사람들은 나를 사랑한다. 사랑해준다. 나는 이유를 모른다. 그러고는 오래가지 않아 모두 떠난다. 그 역시 이유를 모른다. 나는 예쁘지도 않고 상냥하지도 않다. 그냥 편하게 생겼고 조금 재밌다. 그 정도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유다.


지난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옆자리에 앉았던 동료가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일했던 때가 많이 그립다고 했다. 그때 정말 재밌게 일했었다고, 내 덕분에 정말 많이 웃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나와 함께 일했던 때를 그리워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그러나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선 분명 쓰레기였다.


보통의 에세이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통해 사람의 삶에 대한 통찰을 남긴다. 나는 나에서 끝난다. 나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벅차다. 여기에서 다음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남은 왜 그럴까 하는 것은 궁금하지도 않다. 내가 뭔지 모르겠다.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우리 집으로 부르지 않는다. 우리 집은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곳이 못 된다. 작고 아늑한데 나의 시선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좁고 초라하다. 그런데도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이 있다. 오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잠을 자고 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너무 불편했지만 참았다. 그들이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아서 꾹 참았다. 잠에서 깨고 아침에 엉망이 된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했다. 우리 집에 놀러 와 밤새 나와 떠들고 먹고 마시고 웃다가 잠들었던 사람들은 지금 아무도 없다.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그렇게나 사랑했으면서 나를 버린 후유증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가끔 그들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휴대폰을 들고 메신저를 켜보기도 한다. 보고 싶다는 따뜻한 말을 문득 남겨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오래전 친했던 그들에게 문득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날려볼까보다. 뒷감당이야 되든 말든 상관없이 그냥. 답장이 오면 씹고. 안 오면 슬프고. 그냥 그렇게 끝. 보고 싶다는 1초의 감정만 날려버리고 끝.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고백하기 전까지는 나 혼자만의 문제지만, 그 사람에게 고백해버리고 나면 이제 그건

그 사람의 문제가 된다고 했다. 욕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보고 싶다는 말인데 막무가내로 보내면 좀 어떤가.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보고 싶지 않다는 것에 있다. 나는 그들이 보고 싶지 않다.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나의 개그 센스를 뽐내는 게 나의 가장 큰 행복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 이 무슨 가혹한 아이러니란 말인가.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게 대할 수는 없을까. 없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못돼먹은 사람이다.


나이가 더 들면 들수록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결국 나는 0을 향해 수렴하고 있다. 거기엔 불행만 있을 것이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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