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촉촉이 비가 내리고 있다. 그동안의 촘촘한 일정덕에 다리가 묵직하다. 잠을 깼다가 다시 누워 게으름을 피워본다. 베토가 일어나 '한글용사 아이야 노래'를 부르며 몸으로 글자를 만들고 재잘재잘 얘기 했을 아침시간이 너무 한가롭다.
6일 동안 와서 재잘대며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던 라라와 베토가 집에 돌아가니 다시 둘만 있을 때처럼 조용하고 한가로운데 뭔가 아쉽다. 그래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이 있나 보다.
잠시 와서 지내다 갔는데 참으로 허전하다. 있는 동안은 즐겁기도 하고 빡빡한 일정에 힘들기도 했는데 막상 돌아가니 힘들었던 것은 생각이 안 나고 즐겁고 행복했던 것만 기억되고 추억된다. 이번 여행에서 라라와 베토가 우리와 더욱 가까워지고 사랑이 깊어진 것 같아 좋았다.
큰아들의 가족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보인다. 비슷한 나이 때에 부모가 되었고 시어머니가 사시는 큰 형님집 근처에 살면서 자주 시어머니와 시간을 함께 했고 여행도 늘 같이 다녔었다. 지금보다는 모든 게 부족한 시절이어서 그런지 힘들었지만 빠르게 시어머니와 가까워지고 좋은 사이가 되었었다.
삶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과거의 내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같다. 그 시절 시어머니 나이에 나도 며느리를 보았고 손자를 보았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멘토로서의 시어머니가 자리 잡고 계신다. 첫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 시어머니가 내게 해주셨던 맛있는 미역국과, 몸이 회복되는데 좋다고 하는 가물치며 늙은 호박등을 고와 그 국물을 힘들게 먹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몸이 회복되려면 잘 먹어야 한다고 하시며 하루에도 여러 번 미역국에 상을 차려주셔서 먹기 싫어도 나이 든 시어머니가 해주시는 정성에 미안해서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라라가 아기를 낳았을 때 그렇게 사랑으로 돌보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30여 년이 넘은 시간은 시부모의 산후조리보다는 '산후조리원'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선호하게 했고, 퇴원 후의 산후조리도 몇 주 신청을 해서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 달여주셨던 국물들도 좋아하지 않아서 해주지 못했고 단지 한의원에서 달여주는 약을 처방받아 배송받게 했을 뿐이라서 아쉬움이 있었다.
산고를 같이 치른 동지와 같은 마음으로 산후조리를 해줄 수 없는 시절이 편해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며느리와 가까워지고 며느리의 식성을 알아가는 시간들을 빼앗아갔다. 젊은 며느리들도 시부모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아 서로 더 친해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처음 아기를 키우는 부모는 자신만 부모가 된 듯 나이 드신 부모님의 조언을 잘 듣지 않는다. 옛날 방식이라고. 그렇게 안 키운다고. 세상에 자기만 자식을 키우는 듯.
세상이 그렇게 빠르게 변해가고 우리도 나이를 먹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 시절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열심히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면서. 더구나 지금은 모든 게 30년 전보다는 훨씬 더 발전했으니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하는 대로 바라보면서 마음으로 손자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도할 뿐이다.
한가한 시간덕에 비행기표 예매를 했다. 며칠 후가 시어머니 기일이라 집으로 올라가 내 몫을 준비해서 기일에 참석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올 비행기티켓과 마지막날 30일에 집으로 돌아갈 티켓을 예약하면서 항공마일리지를 썼다. 해외에 나갈 때 쓰려고 모아둔 마일리지였는데 다 부질없을 듯해서 이번에 조금 썼다. 이것도 젊은 라라가 알려줘서 할 수 있었는데 아직은 나이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닌데도 빠르게 변해가는 IT 환경에서 젊은 사람의 도움은 참으로 요긴하다.
점심시간도 되어가고 비도 많이 내리지 않아 우산대신 파란색 산티아고 우비를 입고 '김만복 김밥집'에 갔다. 생각보다 한참을 걸어가도 가게가 보이지 않아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언덕을 살짝 내려가니 보였다. 김밥집으로 제주에 여행 온 사람들을 부르니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한번 와서 먹었다는 라라에게 김밥집에 대해 대충 듣기는 하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김밥종류는 하나로 '만복이네'가 있고, 이걸 먹을 때 '오징어무침'을 주문해서 함께 먹어야 맛있다고 먹는 법이 쓰여있었다. 김밥값 + 오징어무침값 = 11,500원 그리고 해물라면 8,500원이다. 밥 가운데 도톰한 계란뿐 야채는 전혀 없는 네모난 김밥을 간장에 살짝 찍어 오징어무침을 올려 먹으니 매콤해서 김밥 아닌 김밥이었다. 독특한 스타일의 김밥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 같다. 해물라면도 게와 해물이 들어간 매콤한 맛이 비 오는 날 먹기에 맛있었다.
심하게 쏟아지지는 않지만 계속 내리는 비에 우비를 입고 해안가를 걸었다. 크고 작은 검은 돌들은 뜨거운 용암이 흘러와 갑작스레 바다를 만나면서 굳어져서 그런지 그때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돌더미들의 다양한 생김으로 비를 맞아 더욱 선명한 검은빛을 띠고 있다. 올레 7코스가 연결되는 길인 듯 표지판이 있고 가끔 이곳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해안가를 지나 숲길로 들어서며 바다를 보니 저만치 해군기지가 보였다.
강정포구 해안에 세워진 해군기지
강정포구에 해군기지가 세워진다고 했을 때 강정마을 주민들과 환경보호단체등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농성해서 여러 해 동안 언론에 오르내렸는데 기지가 완공되고도 몇 해 지난 지금도 강정천 다리 위에 해군기지와 연결된 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지금도 강정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힘든 것 같았다.
왠지 제주도에 오게 되면 꼭 한번 강정마을에 와서 해군기지와 관련된 마을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지가 세워지기 전의 강정마을을 보지 못했으니 시시비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이해받기를 바랐다.
비가 오고 있지만 바다로 흘러들어 가서 그런지 물이 많지 않은 강정천에 흰색과 회색의 황새 두 마리가 날아왔다. 이곳은 사계절 내내 물이 맑고 차서 연어가 올라온다고 표지판에 쓰여있었다. 두 마리의 황새와 함께 그곳에서 바라본 비 오는 바다의 풍경이 고즈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