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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옥 Jun 28. 2023

once upon a time

(종달리해변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천천히 종달리 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101번 직행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종달리 마을이 참 예뻐서 꼭 가보고 싶었다. 부푼 마음으로 터미널에서 종달리 마을 경유하는 201번 일반버스를 타고 출발했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일반 완행버스는 돌고 돌아 1시간 30분을 넘어 거의 2시간이 되어 종달리 마을이라고 내려줬는데 그곳은 내가 보았던 종달리 마을이 아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아니었다. 직행버스가 다니는 길과 완행버스가 다니는 길이 다르다 보니 같은 종달리 마을도 하차 위치에 따라 다른가 보았다.


나는 여기가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두리번거리며 걸으니 속 모르는 남편은 옆에서 핀잔을 주면서 여기가 종달리인데 뭐가 아니냐며 '막상 가까이 와보면 예쁘지 않은 거야'라고 하면서 '동서남북도 잘 모르는 사람이 뭐가 여기가 아닌데~아닌데~하고 있어요' 한다.


평소 동서남북의 위치를 잘 알고 지리를 잘 찾는 남편에 비해 나는 복잡하거나 처음 간 곳에서는 길을 잘 못 찾아 헤맬 때가 있다. 그때마다 우쭐대며 잘난 체를 하는 남편에게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가볍게 응수했는데 오늘은 분명히 어제 지나가면서 본 것이라 바로 수긍이 되지 않고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남편에게 맘이 상했다.


나는 내가 보았다고 믿는 마을의 모습을 찾아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은 골목으로 이어지며 조용하고 말끔했다. 그런데 마을 안에는 카페도 책방도 없이 해안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내가 안내책자에서 읽었던 종달리 마을에 대한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다. 아마도 내가 보았던 종달리 마을은 해안에서는 조금 들어간 곳에 있는 마을로 입구가 다른 곳이 아니었을 까 생각된다.

제주도 안내책자에서 본 종달리 마을 소개

이곳도 올레길로 연결되어 있는 듯 올레길 깃발을 배낭에 꽂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해안가로 걸어가고, 쪽빛 바다 건너 우도가 한눈에 보이고 옆으로 성산항과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그래서 종달리 해안가가 예쁘다는 얘기가 있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마을 안의 이모저모를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해안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종달리 해안에서 우도가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뚱한 채, 남편은 살짝 인상을 쓰며 함께 말없이 해안가를 걷다가 전망대로 올라가게 되었다. 사진을 찍으며 이쪽을 봐라 저쪽으로 서라 하는 남편의 요청에 표정이 나오지 않는다. 쪽빛 바다와 썰물로 물이 빠진 갯벌에 날아든 새들이며 파란 하늘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 너무도 예쁜데 종달리 마을에 대한 아쉬움으로 마음이 풀리지 않아 신나지가 않았다.

멀리 성산일출봉과 성산항이 보이고 갯벌에 내려앉은 갈매기들의 한가로움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전망대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던 한 아가씨가 어색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에게 '사진 찍어드릴까요?' 한다. 남편도 '아~그럼 부탁합니다' 하고는 얼른 포즈를 잡았지만 서로 웃지도 않고 있는 모습이 이상했는지 '서로 마주 보세요', '서로 안아주세요', '마주 보고 웃으세요' 하는 등의 주문을 하며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처음 보는 아가씨의 주문에 따라 포즈를 하다가 저절로 화해가 되어버린 우리가 웃으며 사진기를 받아보니 멋진 작품사진들이 들어있었다. 푸른 하늘과 엷게 퍼진 흰구름과 바다가 어우러져있고 감귤모자 쓴 부부가 마주 보며 웃고, 안고, 장난하는 모습이 예쁘다.


젊은이의 유머 있는 센스가 돋보이는 사진을 보며 나이 든 우리들이 민망했다. 덕분에 속상했던 기분도 모두 풀려서 웃으며 해안을 걷다가 해녀집에서 전복 칼국수와 성게 비빔밥을 먹고 광치기 해변까지 걸어갔다.


눈앞에 성산일출봉이 보이니 가깝게 느껴져 걷기 시작했는데 올레 1코스를 꽤 많이 걸었다. 걸으며 보니 오징어를 줄에 널어 해풍에 말려서 달궈진 돌 위에 구워주는 가게가 있었다. 적당히 건조된 오징어 한 마리 구워서 잘게 찢어 하나씩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걸으니 다리 아픈 줄도 몰랐다.

멀리 성산일출봉에 구름과 어우러진 하늘과 오징어가 가지런히 널려 있는 모습에 취해서.

광치기해변은 35년 전 신혼여행 왔을 때 다른 부부들과 함께 여행사에서 연출하는 대로 남편에게 안기고, 업혀서 달리기를 하는 등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었다. 그 시절에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와서 택시를 대절해 운전기사가 안내하는 곳을 둘만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여행사를 예약해서 10여 쌍의 부부가 단체로 여행을 했다.


호텔은 달랐지만 여행사 버스에 가이드와 사진사가 함께 타고 다니며 제주의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버스에서 이동 중에 관광지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도 하고, 가이드의 진행으로 버스 안에서 부부들이 나와 자신들을 소개하고 장기자랑으로 노래도 불렀다.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는 낯설겠지만. 그러나 신혼여행 와서 각자 서로 어색했던 시간들을 여럿이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즐겁게 여행하던 때였다.


광치기 해변을 향해 걷다가 성산일출봉이 가깝게 보이는 한적한 해변가로 내려갔다. 갑자기 35년 전 설레던 감정이 되살아 났는지 남편은 신혼여행 때로 시간을 돌려 몇 가지 이벤트를 나에게 했다. 다행히 별로 지나는 여행객이 없어서 사진기를 고정해 놓은 채 연출된, 이제는 흰머리가 더 많은 두 사람이 감귤모자를 함께 쓰고 포즈를 하는 모습에서 그 시절 풋풋한 젊음과 수줍음이 함께했던 우리를 다시 보게 되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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