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새 집

(둘째 형이 제일 잘한 일)

by 구슬 옥

어느 날 둘째 형이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새 집을 짓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돈은 내가 대부분 부담할 테지만 형님하고 동생들도 되는대로 성의껏 준비해 줘요.' 했다.


그러나 형제들은 과연 둘째 형이 집을 지을 돈을 준비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믿지 않았다. 그동안 말은 앞섰지만 결과가 별로 없었던지라 형제들의 신뢰를 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것 같았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둘째 형이 나 새집 지어준다고 땅 샀다.'

'예? 형이 이번에는 진짜 집을 지으시려나 보네~요즘 여유가 좀 있으신가?'

'모르겠다, 나도. 일만 저지르는 건지... 나도 걱정이 된다.' 어머니도 내심 좋으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시는 것 같다.


나 역시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형이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괜히 벌려만 놓고 뒤로 나자빠지면 뒤처리는 몽땅 나와 밑의 동생들이 해야 하는데...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었다. 시골에 집을 짓는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그리고 나는 사실 어머니의 연세(年歲)가 있어 시골에 집을 사거나 짓는 걸 찬성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죽어도 이제는 여기서 죽어야지. 병원도 서울로 갈 것 없고, 여기 살다가 가야지.' 하는 말로 그곳에 계속 계시겠다는 의지를 다지셨다.


마침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의 앞집이 낡고 오랫동안 비어있더니, 집은 어차피 너무 낡아 땅값만 받는다고 해서 둘째 형님이 동네 어르신한테 다리를 놓아 계약을 했다고 한다. 시골이라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동네에서 여러 채의 집을 지었다는 업자를 만나 낡은 집을 허물어 폐기물을 치우고 설계를 하면서 일사천리로 집은 지어졌다. 중간중간 공사비도 차질 없이 주면서 형님이 짓고 싶었던 모양으로 집은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우리나라의 건설회사들이 중동에서 건설 붐으로 바쁠 때 사우디로 파견되어 몇 년간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집을 짓는 데는 무지하지 않아 공사하는 책임자와 의견을 나누며 자신이 원하는 자재로 몇 달 만에 멋진 집을 완성시켰다.


30평이 넘는 집을 나이 많은 어머니가 관리하시기에 클 것 같아 내부 평수를 작게 하고 마당에 텃밭을 만들어 드리자는 내 말은 무시된 채 예쁜 집은 완공되었다.


나도 물론 공사비의 1/10 이상을 부담했지만 둘째 형이 대부분의 공사비를 부담한 게 놀라웠다. 항상 집안에 일이 있어 형제들이 비용을 추렴할 때도 모른척하고 내지 않던 형이 어머니가 큰집에서 나와 시골로 내려가시게 되면서 둘째로서의 책임감을 느끼셨었던 같다.


어머니가 사시는 동네에서는 제일 예쁘고 단단하고 따뜻한 현대적인 주택이 지어져 이웃 할머니들의 부러움을 샀다. 은근히 어머니의 어깨가 펴지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유채꽃 향기가 들판을 덮는 5월 초 어느 날 어머니는 새 집에 입주했다. 가재도구도 모두 새로 사서 새집다운 면모를 갖추고 온 가족이 내려가 짐정리를 해드리고 동네에 떡을 돌렸다. 이웃사람들도 들어와 어머니께 인사하며 집구경을 하고 부러워해줬다.


그제야 어머니는 경로당에도 회비를 내고 나가시고, 우리도 내려가면 커피며 라면등을 박스로 사서 경로당에 넣어드리니 흡족해하고 약간은 우쭐하신 모습이 얼굴에 비쳤다. 그곳에는 내가 어릴 때는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다른 얼굴이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아들도 많고 잘들 산다고 하는데 당신이 낡은 셋집으로 내려와 혼자 있는 게 이웃들에게 몹시 민망하고, 이웃들이 흉을 보지 않을까 하는 자격지심에 허름한 집이라도 사고 싶어 했었나 보다.


그래서 어려운 형편으로 산다고 생각한 둘째 아들이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했을 때도 걱정은 되었지만 몹시 기다려지고 흥분되었던 듯했다. 어머니는 이제는 누구보다도 당당해진 낯으로 동네를 활보하셨다. 뜻밖에 나이 드신 어머니에게는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겉치레의 욕심이 아직 그녀에게 있었고, 조금은 즐기시는 듯했다.


형제들 중 누구도 집을 지을 생각은 못했고 마땅한 집이 있으면 옮겨드리려는 계획만 갖고 있었다. 어차피 다시 아들들하고 합치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모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왕 홀로서기를 했으니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사실 결심을 굳히셨고, 그걸 이해한 둘째 형이 시작을 한 것이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옛말이 있다.' 잘난 나무들은 모두 잘려나가 목재로 쓰이고 인기 없는 굽고 약한 나무가 남게 되어 선산을 지키게 되는 것을 빗대어 인간사를 얘기할 때 쓰는 말이라고 알고 있다.


형제들 중 가정사가 잘 풀리지 않아 어머니의 걱정을 늘 받던 형이 본인의 가정은 지키지 못했지만 어머니 노년의 남은 삶만큼은 지켜드리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둘째로서 제대로 집안에 보탬을 주지 못해 면목이 없었는데 집을 지으며 그 역시 어깨가 올라가고 형제들에게도 마음에 빚진 것을 모두 갚은 듯한 뿌듯하고 자신 만만한 얼굴이었다.

'봐라, 나도 해야 할 때는 이렇게 한다고!' 하듯이.


그것이 가끔 지나쳐서 기분이 나쁠 때도 있지만 어쨌든 형이 그동안 벌려온 일 중에 최고로 잘한 일을 했으니 형제들은 그의 뻐김을 받아주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똑같이 나온 형제간 들이라도 하는 짓이 닮은 구석이 분명히 있지만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다. 특히 큰 형과 둘째 형은 두 살 차이라 서로 친하면서도 경쟁을 느끼는 것 같다.


큰 형이 경제적인 것을 책임지며 집안을 이끌어올 동안 나름대로 둘째 형도 기여가 있었을 텐데 특별히 기억되는 게 없는 걸 보면 두 사람의 인생에도 많은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로 기질도 다르고 감성도 다르지만 군생활을 마치고 외삼촌을 통해 두 분 다 인쇄업 쪽 일을 함께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둘째 형은 큰형이 월남으로 파병을 가는 바람에 보충병으로 전역을 했기 때문에 큰 형이 술 한잔 하시면서 얘기하는 군생활에 어울릴 수가 없었고 알게 모르게 기가 죽었던 것 같았다.


기계를 보는 것은 둘째 형이 더 잘했고, 큰 형은 사업 쪽으로 주문을 받고 물건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깔끔하고 성실하게 잘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자기 사무실을 갖고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반면에 둘째 형은 부침이 심해서 결혼해서는 사우디에 몇 년씩 갔었고 그것이 가정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와 어머니를 힘들게 했었다. 몇 년 동안 더운 나라에서 고생하며 벌은 돈도 모두 없어지고, 가정도 잃은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 가정을 꾸리고 열심히 일해서 집도 장만하고 행복하게 사시는 것 같았는데 또다시 가정이 분리되었다. 이번에도 집을 주고 본인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우리 형제들 앞에서는 말도 안 되는 허풍으로 자신의 부를 과장하곤 했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는 해도 여덟 남매들이 그럭저럭 자리를 잘 잡고 살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둘째 형만이 여러 가지로 어긋났다. 자연히 집안의 큰일을 할 때 자신의 몫을 담당하지 못했고 다른 형제들도 그러려니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말뿐이겠지' 하고 다들 건성으로 들었는데 제대로 일을 저질러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렸다.


혼자 살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거의 매주 어머니에게 내려가 주말을 지내고 가니 어머니 주위의 할머니들이 부러워하고 칭찬이 자자했다. 나도 그런 둘째 형의 모습이 좋아 보이고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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