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시골로 내려가신 후 처음 맞이하는 추석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우리들은 언제나처럼 큰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야 되는데 시골에 그녀가 걱정이 되었다. 자주 전화로 추석 전에 모시러 가겠다고 그가 얘기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안 간다. 너네들이나 가서 차례 지내고 시간 되면 오던지 알아서 해라' 하신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머니, 어머니가 그 자리에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가나요.' 한다.
내려가신 지 서너 달의 시간이 지나고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옛 말처럼 그녀의 마음이 많이 풀어진 것 같아도 며느리에 대한 서운함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나는 전화할 때마다 애매하게 이웃집의 이야기를 핑계 삼아
'어머니가 그러시면 아주버님은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그 집 남편도 집안일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암이 생겼다는데...' 하며 은연중에 그녀를 압박했다.
서운함도 빨리 털어야지 아니면 이 집 저 집 모두 스트레스로 병이 생길 수 도 있고, 어차피 그렇게 된 일을 갖고 양쪽이 팽팽하면 주변 식구들도 할 일이 아니어서 중간지대의 만만한 셋째 부부가 나섰다. 어차피 큰동서는 본인의 잘못을 알고 있고, 맏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을 못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서 모른척하고 어머니가 추석날 우리와 함께 아침에 가면 화해는 될 것이라 생각했다.
추석이 되기 일주일 전에 그의 형제들과 벌초하러 시골에 갔다가 그녀를 모시고 올라왔다. 그녀도 명절이 가까워 오니 시골에 혼자 남아있기에는 남의눈이 신경이 쓰였는지 미리 준비해 놓은 참기름이며 생선들을 챙겨 큰 아주버니에게 명절 준비하는 데 쓰라고 미리 보내고 우리 집으로 오셔서 쉬셨다.
이 집 형제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하루 전에 큰 집에 모여서 함께 전을 부치고 송편을 만들면서, 재미나게 웃고 떠들면서 하루를 자고, 명절을 지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러나 다섯 형제들이 각자 식구들을 데리고 명절을 지내러 오면 큰 동서는 끼니마다의 먹거리며, 자고 가는 사람들을 위한 이부자리등을 미리 준비하고 처리하느라 작은 몸이 힘들었다.
언젠가 내가
'형님, 각자 하나둘씩 맡아서 음식을 준비해서 명절날 아침에 오면 안 될까요? 미리 준비하시기도 힘든데.'
라고 의견을 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형님이 할 만하셨는지
'그렇게 하면 나도 좋지. 그런데 아직은 괜찮아~ 내가 힘들면 얘기할게' 하셨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조카들이 다 크고 큰동서도 나이가 들면서, 어느 날 우리 동서들을 모아놓고
'다음 명절부터는 각자 한 두 가지씩 책임을 맡길 테니까 집에서 해오고 명절 당일날 아침 일찍 오는 걸로 하자' 하고 대장의 명령을 내렸다. 물론 그때도 형제들은 살짝 불만스러워했지만 동서들은 모두 대장의 말대로 하기로 하고 하나둘씩 책임을 맡았다.
그래도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놀다가 점심되기 전에 각자의 친척들을 방문하러 일어나곤 했었다.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우리 집안에는 없었다. 아니 큰동서에게는 조금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나 다른 동서들에게는 즐거운 모임에 참석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이번에 추석은 달랐다. 두 분 모두 각자 나름대로 서운함과 억울함이 있겠지만 서로 만났을 때 화해가 되어야 할 텐데. 아니다. 마음을 처음처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금은 그어졌으니. 하지만 시나브로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내게 맡겨진 음식을 만들고 과일을 준비해서 아침 일찍 그녀와 아이들과 함께 큰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큰 아주버님이 문을 열며
'어머니 어서 오세요.', '얘들아~할머니 오셨다. 나와서 인사해라~' 큰소리로 안에 알렸다.
그러자 괘종시계를 엎었던 큰 조카가 얼른 나와서 인사하며
'할머니 오셨어요.' 한다. 평소처럼. 다행이다.
뒤따라 여러 사람들이 인사하고 난 후 집안에 들어가시는 그녀에게 큰 동서가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와
'어머니 오셨어요' 한다.
그러고는 다른 말 없이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아쉽지만
'그래 잘 있었니.'
하는 말씀을 하시고는 거실 소파에 앉아 분주히 준비하는 며느리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어린 손자들이나 손녀들이 옆에 와 앉아 이야기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차례를 지내고 모두들 모여서 웃으며 식사를 하고, 설거지가 끝나고 과일을 먹으며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각자 사는 얘기들을 하지만 큰동서나 그녀의 낯은 그리 환하지 않다. 서로 미안한. 서로 서운한. 그런 얼굴빛이다.
그러나 어린 동서들은 모른 척 웃으며 조카며느리와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은 사촌끼리 재미있게 이야기에, 게임에 열심이다. 나는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동서들의 얘기를 들으며 집안의 공기를 계속 눈으로 체크하다가, 동서들이 친정으로 출발하려고 일어서면 같이 일어나 그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 두 해가 지나며 시나브로 두 사람의, 아니, 형제들 가슴에 얹혀있던 돌들이 작아지고 모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