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홀로서기

(노여움도 서운함도 잊으며)

by 구슬 옥

집에 오셔서 며칠 뒤 시어머니는 시골로 내려가시겠다고 하셨다. 시골 큰 시누이에게 셋집이라도 알아보라고 하셨는지 마땅한 집이 있으면 거기가 사시겠다고, 혼자 살아보시겠다고 하셨다. 고민 끝에 내린 내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녀는 무조건 시골로 내려가시겠다고 오시는 날부터 확고하게 말씀하셨다. 큰 자식이 같이 살기 힘들다고 했는데 밑의 자식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아마도 살림이 어려웠던 집 아이들이 모두 잘 커서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결혼해서 집장만하고 어머니 모시고 사니 작은 시골동네에서 칭찬과 부러움이 많았었나 보다. 그래서 그녀는 시골 가서 살고 싶다고 하시다가도 '내가 가서 혼자 살면 시골사람들이 자식들 흉보지 않을까?'

'애들 욕먹게 안 하려면 불편해도 너네들 하고 서울서 살아야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우리들 역시도 '아들이 몇인데 어머니를 시골에 혼자 사시게는 할 수 없지' 하는 마음들이 늘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드러난 민낯으로 가릴 것 없는 모습이 되었으니 그런 흉들이 두렵지 않으셨나 보다.

처음에는 안된다고 하던 그도 '어머니가 정 그러시면 그렇게 하세요. 어머니가 직접 움직이시며 식사도 준비하시고 동네 할머니들하고 어울려 경로당에서 노시는 것이 어머니의 건강에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살아보다가 힘들어서 안 되겠다 하시면 언제든지 저희 집에 오셔서 같이 사세요.'


하며 순순히 시골로 그녀의 살림을 내었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왜 그때 엉뚱한 짓들을 해서 그녀와 형수사이를 힘들게 하고 그녀의 마음에도 상처를 드리게 했냐는 나의 뼈아픈 질책에 아무 말 없이 그는 그녀의 시골살이를 받아들였다.


며칠 후에 마땅한 집을 사지도 못하고, 마땅한 전셋집도 없는, 오직 일 년에 한꺼번에 내는 연세(年貰)를 내고 주인 할머니와 대문을 함께 쓰는 방 두 칸짜리 허름한 독채를 얻어 이사했다. 그곳도 오래전에는 큰 배가 들어올 수 있는 바다가 가까운 마을이었는데, 바다를 메우는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도 없어지고 항구도 사라져, 면사무소가 있는 동네인데도 갑자기 구하려니 마음에 차는 빈 집들이 없었다.


그래도 그녀가 살게 된 동네는 아늑하고 경로당이 가까이 있고 옛날부터 이웃사람들도 점잖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좋은 곳이라고 그녀는 마음에 들어 했다.


시골도 휴일에는 일손을 구할 수 없어 그의 형제들이 도배를 한다고 했지만 그걸로 허름한 방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급하게 몇 가지 전자제품을 들이고 가재도구를 넣어 그럭저럭 생활을 하실 수 있게 해 드렸다.


그가 천천히 알아보고 마땅한 게 있으면 그때 가시자고 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시누이가 알아본 낡은 집으로 가셨다. 나이 들어 몸이 늙어가고 자녀들과의 소통도, 변화가 빠른 세상과의 소통도 쉽지 않은 데서 오는 서러움과 몇십 년을 함께한 큰아들 내외와의 생각지 못했던 언쟁이 주는 노여움을 안고서.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가 갖게 된 노기와 서운함이 그녀를 꿋꿋하게 시골집에서 정착할 수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무도 그녀와 형수의 일에 대해 별다른 언급 없이 그녀의 시골행을 받아들였고, 안 해보던 도배를 하느라 하루종일 힘들었던 그의 형제들과 그녀와 며느리 셋은 사우나에 가서 목욕을 하고 웃으며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아마도 각자 집에 돌아가서는 혼자 생활할 그녀에 대한 생각에 죄스러운 마음과 복잡한 여러 생각들이 얽혀 술 한잔씩 안 하고서 잠이 들 수 없었을 테지만.


제일 난감해했던 큰 아주버니나 정이 많고 목소리 큰 막내 시동생도 표시 내지 않고 말없이 일했다. 그녀 역시 허름한 집에서 혼자 살 생각에 심난하실 텐데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동안은 의연했고 다른 때나 다름없었다. 스스로 당신 혼자 살 수 있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근처에 사는 시누이가 자주 들려 그녀의 마음을 풀어 줄 수 있을지 아니면 더 불을 지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시부모를 모시고 살지 않는 시누이들이 큰동서에 대해 큰 흉은 보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큰동서와 알게 모르게 깊어진 정도 있고, 그녀들 역시 누군가의 며느리였으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을 큰동서가 의견을 냈을 때 서로 생각을 맞추고, 시어머니가 사실 만한 집을 물색해서 구하고 수리해서, 번듯하게 가재도구를 챙겨드려 기분 좋게 이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모두에게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만들고 조카들에게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니. 이제 엎질러진 물이라 필요 없는 생각이지만 아쉬움에 가슴을 쳤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는 하지만 조금만 서로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살폈다면, 한 사람의 희생만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닌 '개인'으로의 자신들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녀의 이사를 돕기 위해 큰동서는 오지 못했다. 아마도 얼마동안은 그녀도 큰동서도 마음이 힘들 것이다.


그녀는 매년 내야 하는 집세와 생활비를 자식들에게 의지하는 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점차 그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내려가 그녀와 함께 근처로 여행도 가고, 우리에게는 많이 불편한 잠자리였지만 침대가 아닌 요를 깔고 누워 옛날 얘기를 듣던 어린 시절처럼 그녀와 도란도란 수다를 떨다가 잠드는 풍경도 나에게는 좋았다.


다만 옛날 집을 대충 고쳐서 세를 받는 집이라 그녀에게는 새집이 필요했고 그녀도 집을 하나 사고 싶어 했다. 잠깐 살다가 다시 자식에게 합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이웃의 비슷한 또래의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 하고도 친구가 되어 적적하지 않은 듯했다.


또 하나, 오랜만에 그녀는 경제권을 스스로 발휘하는 게 나름 재미있고, 자식들이 내려왔다 갈 때 생선이며 참기름등 무언가를 준비했다 주는 기분도 좋았다. 아들 집에 있을 때는 식구들의 기분이 어떤지 눈치도 보았지만 여기서는 조금 외로운 것만 빼면 자유로웠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계속 그곳에 집을 사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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