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연민

(그렇게 힘든 건가요?)

by 구슬 옥

휴일인데도 평소처럼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어제는 금요일 저녁의 달콤한 시간을 꿈꾸며 퇴근해 들어오면서 바로 내 집으로 들어가려다 위층에 현관문이 열려있는지 말소리도 조금 들리고 흐느끼는 소리도 들려 예감이 좋지 않아 올라갔었다.


내가 어릴 적에도 가끔씩 가족 간에 언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뿐으로 몇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다른 날처럼 즐거웠던 걸로 기억된다.


아빠는 휴가 때면 엄마와 우리들 삼 남매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시며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시고 엄마도 활짝 웃으며 행복해하셨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무엇 때문인지 항상 말다툼이 있었고 엄마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는 '자기들끼리 잘 놀다 왔는데 왜 집에 들어오면서는 싸우냐? 기분 좋게 잘 다녀와야 나도 맘이 좋지.' 하는 소리를 자주 하셨었다. 그때는 '몰라요 할머니, 엄마가 피곤하신가 봐요.' 하고 어린 내가 생각되는 대로 얘기를 했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는 빌라맨션에 삼촌 셋 하고 고모 하나, 할머니 그리고 우리 집 삼 남매와 엄마 아빠까지 10 식구가 살았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막내 고모와 셋째 삼촌이 각각 결혼하셨고,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큰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집에서 넷째 삼촌이,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마지막으로 막내 삼촌이 결혼하셔서 모두 분가하셨다.


반지하와 2층까지 있는 큰 주택인 그 당시 우리 집은 주말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는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들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일찍 결혼하신 둘째 작은 아빠와 고모들 그리고 그 가족들로 꽤 큰 주택인 우리 집이 꽉 찼었다.


나는 방학이면 시골 고모집으로 놀러 가 놀았던 사촌 형들과 사촌 동생들이 와서 함께 노는 것도 즐거웠고, 어른들끼리 음식을 만들고 차리면서 하하 호호하며 웃는 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할머니도 기분이 좋아서 연신 웃으며 얘기하시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었다. 우리들은 식구들이 많다는 게 힘들지 않았고, 다른 집들도 다 그러려니 했다.


어머니도 집안행사를 준비하고 치를 때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았고 작은엄마들과 즐겁게 웃으며 일하시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쳤고, 그렇게 이해되었었다. 내가 결혼을 생각하기 전 까지는.


한 번은 누나가 결혼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몹시 실망하셔서 작은 아빠들에 대해서 불평하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그런 걸로 속상해하시는 게 이해되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그것도 잠깐으로 어머니는 서운함을 털고 옛날처럼 작은 아빠들이나 작은 엄마들과 잘 지내셨기 때문에 엄마가 큰 며느리로 사는 걸 힘들어한다고는 크게 생각하지 못했었다.


가끔 밖에서 술을 많이 드시고 집에 오신 아버지가 주사(酒邪)로 옛날 아버지 어려웠던 시절을 얘기하시며 눈물을 흘리고 우실 때 어머니가 싫어하시고 화내셨던 기억은 있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앞두고 지금의 아내와 잠깐 헤어진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사귀었는데 무엇 때문에 헤어졌냐고 나에게 물어보셨다. 나는 심드렁하게

'걔가 아버지 형제들이 많고 맏며느리 자리가 불편하고 힘들 것 같다고 그만 만나자고 하더라고'


'괜찮아요. 할 수 없지요 뭐. 내가 이 집의 장남인 거는 변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런데 맏며느리가 그렇게 힘든 건가요?'

하며 어머니께 슬쩍 여쭤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나는 걔한테 힘든 짐은 안 줄 거야. 내 일은 나로 끝나면 충분해. 너네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너네는 우리와는 다르잖아.' 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 후에 내가 계속 지금의 아내와 만나지 않고 있으면서 어깨가 처진 채 다닌다고 생각하셨는지 어머니는 나에게

'우리는 너희들한테 힘들게 안 할 거야. 맏며느리라고 특별히 더 힘들게 안 할 테니 그 아이 데리고 인사 와라. 엄마가 직접 말할 테니.' 하셨다.


어쨌든 우리는 다시 만났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 아직은 내가 벌어놓은 돈이 없어 어머니가 세를 받는 집에 들어와 살지만 조만간 우리는 멀리 이사를 갈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왜 내가 그렇게 했을까? 작고 여린, 그리고 이제는 예전보다 많이 약해진 어머니가 울고 계신 것을 보니 그냥 화가 났었다.


누구 때문이란 것도 없이. 아니다. 어쩌면 아내보다는 아버지 식구들을 더 생각하는 아버지 때문일 것이다. 이미 결혼해서 모두 분가해 잘 사는 데도 늘 신경 쓰고 챙기면서 어머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버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선지 고모들도 당신들 집에 일이 생기면 아버지한테 연락해서 도움을 청했다. 어려서는 아버지가 도움을 주고 해결을 해 주지만 이제는 다들 나이도 있고 당신들 자식이며 시댁의 식구들도 있을 텐데 무조건 일이 생기면 아버지한테 연락이 온다.


아버지는 싫어하는 기색 없이 작은 아빠들과 함께 항상 일을 처리해 주고 뿌듯해하셨던 것 같았다. 물론 어려운 일을 형제들끼리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은 옳은 일이고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형제가 많은 아버지네의 경우는 그럴 일이 잦았다.


그런 것들이 어머니를 힘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해야 하는 맏이의 역할이 이제는 진력이 났고 그래서 할머니 하고도 더 함께 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어제 나는 울고 계신 어머니에게 '그만큼 하셨으면 되었다고, 그만하셔도 된다'라고 위로해 드렸다. 아마 어머니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나도 아내를 따라 처갓집에 가면 아직도 생경하고 불편한데 낯선 남편의 식구들과 얽혀서 사는 것이 어떻게 쉬울 것인가. 아버지는 당신의 생각만 하고 결혼해서 30 몇 년이 넘어가도록 아버지의 일을 도와 적잖이 힘들었을 어머니에 대한 배려가 없다.


나는 아버지에게 나이 들어 쇠락해지는 어머니에 대한 끈끈한 연민이 없는 것 같아 슬펐고 슬프다.

이전 05화이제, 그만하셔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