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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ptonic Mar 22. 2022

밴쿠버에서 브랜든까지-10박 11일 캐나다 여행기

프롤로그 - 캐나다에 들어가기까지


미국이라는 넓은 나라에 살다 보니 아무래도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가까운 도시들보다는 좀 더 먼 곳의 도시들을 자주 다녔었다. 대학 졸업과 취업을 거치며 바빠지기 전에 최대한 가기 쉽지 않은 곳들부터 공략해 보자는 나름대로의 사고를 거쳐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미국 북서부 쪽의 시애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주로 뉴욕, 보스턴, 시카고, 그리고 마이애미 등의 동부 쪽을 더 자주 가는 편이었고, 주변에서 종종 가는 밴쿠버 같은 도시들을 오히려 피했었다. 



언제든지 갈 수 있는데 뭐,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던 탓일까, 밴쿠버는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이후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도시가 되어버렸다. 육로 국경이 막혀버린 탓에 밴쿠버에 사는 친구들을 찾아가겠다는 약속도 '언젠가 꼭'이라는 막연한 말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고, 그렇게 거의 일 년 넘게 하염없이 기다리던 나날이 이어지다 드디어 조금씩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캐나다를 막는 육로 국경이 풀렸고, 가장 중요한 2주 자가 격리 의무가 면제되었다. 백신 접종 proof를 보여줘야 하긴 하지만 나는 백신이 풀리는 족족 부스터 샷까지 다 맞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국경이 풀리자마자 밴쿠버를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미룬 이유 중 하나는, 캐나다를 가는 김에 다른 도시들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토론토에 사는 친구도 있고, 매니토바까지 가야만 볼 수 있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다 갈 수 있는 날짜를 찾는 도중 매니토바 주의 '브랜든'이라는 도시에 사는 친구(이자 소울메이트ㅋㅋ)의 결혼 날짜가 2월 19일로 확정되어 초대장까지 받게 되었다.



마침 그쯤이면 토론토의 락다운도 (토론토의 상태가 꽤 심각하다고 들었다...) 풀린다고 하고, 밴쿠버에 사는 친구들도 대체로 시간이 된다고 하고, 토론토에 사는 친구와도 시간이 맞고, 말 그대로 이건 캐나다에 가야 하는 운명이다 하고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고민할 새도 없이 비행기 표와 숙소들을 전부 결제했다. 



이 결정을 내렸을 때가 아마 11월쯤이었을 것이다. 3개월 전부터 예약을 하니 비행기 표들도 꽤 저렴해서 밴쿠버 - 토론토, 토론토 - 위니펙, 그리고 위니펙 - 시애틀 이렇게 세 번의 비행 가격이 USD 500달러도 들지 않았다! 



(정말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지 않지만) 비행기 표를 예약할 때 P 답지 않게 여행 계획을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세우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시애틀 사람으로서 언제든지 갈 수 있는 밴쿠버는 금요일 저녁에서 일요일까지만 있도록 비교적 짧게 일정을 잡았고, 토론토에는 먼 곳인 만큼 좀 더 시간을 보내고픈 마음에 월요일에서 목요일 아침 (사실상 새벽이긴 하다)까지 있도록 일정을 잡았다.



매니토바 주의 브랜든은 비행기로 한 번에 갈 수 없는 도시이기 때문에 중간에 위니펙에서 하루를 지내야 했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도시이긴 했지만 친구 덕에 사람 한 분을 소개받아 그분과 만나기로 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즐기긴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준 친구에게 다시금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나마 비행기로 갈 수 있는 다른 주들과는 다르게 매니토바 주의 브랜든은 정말로 친구의 결혼식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과연 다시 갈 일이 있을까 싶어 기왕 가는 김에 결혼식 날짜를 포함해 이틀 정도 있다가 가기로 했다. 



그렇게 각각의 도시에서의 여행 날짜를 전부 확정 짓고 숙소도 에어비엔비를 통해 아주 싸게 예약을 마무리 지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닐 때 숙박에 돈을 많이 쓰지 않고 차라리 그 돈을 맛있는 것을 더 먹고 무언가 더 경험하는데 쓰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가정집의 방 같은 곳을 주로 노려 예약했다. 다음 글에 쓰겠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 숙박에 많은 돈을 써야 했던 밴쿠버와 결혼식이 열렸던 호텔에서 숙박했던 브랜든을 제외한 다른 도시들에서는 평균적으로 하룻밤에 2~3만 원씩만 내고 묵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애틀-밴쿠버, 그리고 위니펙-브랜든은 비행기로 가기보다는 기차나 버스로 가는 게 더 어울리는 거리이기 때문에 전자는 암트랙 (Amtrak), 후자는 Brandon Air Shuttle (위니펙 공항에서 출발해 브랜든 곳곳에서 내려준다!)로 예약을 미리 완료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예약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귀국하기 전 받아야 하는 신속 항원 검사 예약이었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려면 무조건 귀국 전날 받은 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하므로 최대한 피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돈을 내고 받는 신속 항원 검사를 예약했다. 다행히도 위니펙 공항에서 검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예약할 수 있었다.



모든 예약을 완료하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은 차분히 여행 날짜를 기다리며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백신 접종 서류에 더해 캐나다 국경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72시간 이내에 받은 코로나 음성 테스트를 제출했어야 해서 일도 미리 빼고 코로나 검사를 받고 왔고, 다행히도 음성이 나와 무탈히 캐나다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캐나다로 들어갈 때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나는 암트랙을 기차로 알고 있어 밴쿠버까지 기차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한껏 한 뒤 기대감을 가지고 기차역에 갔는데, 알고 보니 밴쿠버까지 가는 교통 편은 기차가 아닌 버스였다.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인원이 적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기차 여행에 대한 로망을 잔뜩 품고 왔는데!



아무튼 버스를 타고 캐나다 국경에 가니 모든 짐을 다 내리고 줄을 서서 국경의 직원들에게 거의 심문에 가까운 질문들을 받아야 했다. 캐나다에는 왜 왔는지, 시애틀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필요할 시) 격리 플랜은 있는지, 이런 질문들을 연이어 받고 난 후 말만 랜덤이지 거의 줄에 선 사람들 반 이상에게 나눠준 코로나 셀프 검사 키트를 받고 다시 버스에 타 밴쿠버까지 이동했다.


글을 쓰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미 사라진 규칙이지만, 2월까지만 해도 입국하는 사람들을 랜덤으로 지정해 (이미 음성 결과를 가지고 왔음에도!) 코로나 검사를 받게 했다. 국경에서 바로 검사를 받게 하기도 하고, 스스로 하도록 셀프 키트를 나눠주기도 하는데, 나는 후자에 걸렸다. 



문제는 내가 캐나다에서 묵을 숙소가 다인실이었다는 것이다. 검사를 하려면 당연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므로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우리는 당신을 받을 수 없다. 미안하다.'라는 말만 듣고 즉석에서 개인실이 있는 다른 숙소를 예약해야 했고, 의도치 않게 편안하게 호텔에서 지내게 되었다. 숙박비를 최대한 아끼는 게 내 여행 방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너무 아까웠지만 눈물을 삼키고 무거운 짐을 들고 새롭게 예약한 숙소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검사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격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검사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단순히 셀프 키트로 검사를 해서 제출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키트를 웹사이트에 등록하고, 내가 검사를 하는 동안 나를 지켜볼 감독관과의 온라인 세션 예약도 잡아야 했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무거운 짐을 끌고 숙소에 겨우 도착하자마자 바로 노트북을 꺼내 온라인 세션 예약을 하고 검사를 끝냈다.



특이한 건 근처의 Drug Mart (대충 미국의 월그린, CVS, Bartell Drugs 등을 전부 하나로 합친듯한 공간)에서 키트를 배송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내 숙소는 밴쿠버 다운타운에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Drug Mart가 바로 근처에 있어 이 모든 과정을 짧은 시간 내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한 2시쯤이면 도착하고 바로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었겠지만, 숙소 변경과 코로나 검사라는 예상치 못한 두 악재가 겹치는 바람에 거의 5시가 되어서야 드디어 밴쿠버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친 뒤 고작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이 모든 규제가 완화된 걸 보니 좀 씁쓸하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기는 한다. 조금만 더 일찍 규제를 풀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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