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의 단절을 간절히 바란다.
그 어디에도 내가 있지 않기를,
그 누구도 내게 닿지 않기를.
그저 살아 숨 쉬는 것이
그 자체로 힘에 부치기에.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
나의 답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잘못된 것들이 버젓이 답이 된다.
애쓰는 것조차 무의미해지고,
더 이상 생각하는 것마저 포기한다.
때때로 찾아오는 손님이다.
심지어 꽤나 오래된 단골이다.
세상의 탓을 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려 한다.
나는 이 불편한 손님이
방문할 때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만 좀 오지.
왜 지금이야, 가장 바쁠 때.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을 흐린다 했던가,
이 미꾸라지는 덩치도 상당하다.
때문에 나는 이 손님을 보는 순간,
문을 닫아버렸다.
그게 나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다.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가질 때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유일하고, 아무도 이해 못 할 테니까.
하지만 인간이라는 동물은
지독히도 비슷한 존재들이다.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
겪고 느끼는 건 너무도 비슷하다.
과잉된 자의식을 벗어나,
동물로서 인지하게 되었을 때 많은 의문이 들었다.
손님은 손님이고, 나는 주인인데..?
미꾸라지는 몸부침 치지만, 그래서 강이 사라지나..?
이내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내가 문을 닫았고, 내가 탁한 곳을 보는구나.
가게의 주인으로, 흐르는 강의 눈으로.
고마운 손님도, 정화되는 과정도 있다.
나의 편협한 시선으로 인해,
고마운 손님들을, 나아지는 순간들을 놓쳤다.
스스로를 굳이 고립시키며
나와의 대화를 차단했구나.
대화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보니 의외의 답변들이 돌아온다.
진상 손님을 보는 다른 손님의 입장에서는
주인이 안타깝게 느껴지고 응원을 해주기도 한다.
미꾸라지의 몸부림에 탁해지는 시간은
흐르는 강물에 비해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했다.
보고자 하면 보이고,
듣고자 하면 들린다.
나는 고통을 피해 숨은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들을 보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진상 손님은 찾아오고
생태계를 교란하는 미꾸라지가 튀어나온다.
다만, 결국엔 손님도 떠나고
물은 흘러감을 알고 있다.
나를 응원해 주는 다른 이와
지나가며 나아질 것을 알기에 든든하다.
세상을 원망하고, 단절되길 원하는 건
나와의 대화를 포기하는 일이다.
나는 스스로를 보다 아껴주려 한다.
내게 건네는 작은 응원과 사소한 시선은
보이지 않던 나의 팬들을 만나게 한다.
단순하고, 쉽다.
스스로 말해보자.
아유,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래도 금방 맑아지더라구요.
햇살이 좋네요. 3초만 즐겨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