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차려.
체벌.
운동선수는 원래 맞으면서 배우는 거야.
정신 안 차려?
직접 겪으며 살아온 나는,
그것들이 효과가 있음을 안다.
몰아붙이는 순간이 필요함은 동의한다.
하지만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긴장이 올라가면, 몸과 마음이 굳는다.
굳어버리면 더 위험해지는 것도 안다.
그렇기에 미리 그런 순간들을 제어하도록
연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머리든 몸이든
어떤 한 곳에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굳어서 위험해지기 전에
굳은 채 부서지고 만다.
내가 생각하는 개념과 별개로
방조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나는 이런 순간들이 너무 괴롭다.
몸과 마음은 하나다.
때문에, '얼'차려 / '체'벌 이라는 표현을 쓴다.
강인한 정신을 위한 것이고
강인한 육체를 위한 것이다.
본질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단지 몰아세운 채 멈춰서는 안 된다.
몰아 치는 전후 상관없다.
적어도 '왜' 에 대한 하나의 포인트만 주면 된다.
신뢰를 쌓아야 한다.
코치와 선수 사이에서, 선수 내면에서.
저 사람이 지금 왜 몰아치고 있을까.
나는 이걸 왜 이겨내야 하는가.
단 하나의 질문만 남길 수 있다면,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하여 변화한다.
이 대화를 시도해 본 적이 있다.
그런 질문마저 스스로 떠올려야 한다고 한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아닌가.
단지 몰아세우기만 한다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어느새 행동의 목적을 잃은 채
무의미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너는 그런 적 없냐고 물으면,
나는 정신적으로 몰아세우는 전문가라 말한다.
다만, 나는 그 순간이 왜 필요한지
스스로 가져갈 수 있는 질문을 함께 건넨다.
동시에 그저 괴롭히는 게 즐거운 사람이 아니라,
더 큰 위험을 대비하는 것이라는 신뢰를 주려 한다.
지금도 나는 매일 같이 그들의 한계를 마주한다.
무너지면 일어나는 방법을 알려준다.
단편으로 떼어놓고 보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악마가 된다.
하지만 내 곁에서 웃으며 마무리한다.
목적을 잃지 말고, 그 사람을 위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관성적으로 하는 것들이 있다.
어느 순간, 목적도 의미도 없이 반복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에 잠시나마
브레이크를 걸어보려 노력한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좌절과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가능하다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 중
좋지 않은 것은 덜어내려 한다.
무의식적으로, 관성적으로 하는 행동 중
도움이 되고 좋은 것들은 남기려 한다.
다소 격앙된 글이다.
다만, 그만큼 스스로에게도 경각심을 주려 적는다.
나의 관성에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부디, 진심으로 위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