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 대신 김광진

by 로그모리

나는 완벽한 한국인이다.


몸에 새겨진 락발라드의 영혼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한국인은 자고로 락발라드를 부를 줄 알아야 한다.

부활, 김경호, 서문탁, 임재범 등등


숨조차 돌리기 어려운 가수들의 노래를

목에 피맛이 나도록 연습했다.


그중 윤도현은 내게 가장 잘 맞는,

가장 사랑하는 가수이다.


너를 보내고, 흰 수염 고래, 나는 나비 ...

특히나 박하사탕은 부른 횟수만도 3자리는 넘을 것이다.


역시나 취기가 오르면

노래방을 가야만 했다.



분명 알고는 있었으나

이제야 전율이 오르는 가수가 있다.


격한 고음 없이도 서사가 담기는 목소리는

차분함 아래 숨이 멎게 만든다.


맑지만 단단한, 꾹 눌러 담은 진심이

귀를 지나 가슴에 닿는 느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즐겨왔지만

절대 흉내 낼 수 없을 거라 확신하게 되는.


김광진 님의 목소리는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시간이 흘러 지금 부르는 라이브가

더 세련되고 단단해졌다니.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는가.



우선, 다소 격렬한 비유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여전히 모든 가수를 사랑한다. 특히나 윤도현을 더.


애정으로만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나는 노래를 부르며 깨닫기도, 포기하기도 했다.


나의 방식으로 부를 수는 있어도

가슴에 때려 박는 감성은 다르다는 걸 알았기에.


그럼에도 여전히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시간이 쌓여감에 따라 변화하는 것도 있겠지만

분명 나는 나름 확고한 노래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서서히 쌓아가는 빌드업을 통해

시원하게 질러야만 노래를 한 기분이 드는.


그런 노래를 좋아했고, 나름 잘(?) 했다.

몸에 새겨진 영혼은 취기와 함께 발산해 왔다.


지금도 언제나 기회만 된다면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튀어나온다.



듣기만 해도 충만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건

아마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분야임이 분명하다.


도전적인 성향으로 가득했던 날들엔

어려울수록 꼭 해내야만 했기에.


She`s gone 과 같은 노래는

나에게 숙제와도 같은, 동반자였다.


그 어떤 어려운 노래도 포기 대신 도전을 하던 내게

깔끔한 포기와 함께 만족감을 주는 곡이 찾아왔다.


김광진의 편지를 들으며

나는 생소한 마음을 떠안게 된다.


그저 듣기만 해도 충분하다니,

오히려 듣고서 움직일 수 없는 감정이라니.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꺼내어 보여준다면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술과 함께 하던 평생 동안,

비슷한 감정이 오면 슬쩍 훌쩍이고 말았다.


술 대신 차를 마시는 지금

오히려 처음으로 감정을 붙잡고 살펴본다.


애절하게 그대를 붙잡으려 부르짖는 대신

담담하게 그대를 보내주며 읊조리는 마음.


이 마음을 이해하기에 그날들은 꽤 어렸고

이 마음을 이해하기에 지금은 제법 겪었나.


폭발하는 감정으로 바라볼 땐 지나쳤으나

차분해진 감정으로 바라보니 느껴지는가.


하나의 이유만은 아니겠으나

내게 없던 관점임은 분명하기에.



충격에 휩싸인 몇 주를 보내고 나니

새삼 차분하게 생각이 정리가 된다.


김광진님 특유의 감성에 젖어 있을 때는

이게 정답인 것 같은 기분에 젖어있고


윤도현님 특유의 감성에 취해 있을 때는

이게 정답인 것 같은 기분에 취해 있다.


극단과 극단은 통한다고 했던가

전혀 다름에도 같음을 느낀다.


이미 몇 십 년을 존재해 왔던 노래들은

왜 이제야 내게 와서 닿아 울림을 줄까.


결국 받아들이는 내가 느낄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본질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미 답은 다 있지만

내게 담지 못할 뿐이지 않을까.



단순한 노래의 취향을 얘기하려다

다소 달라진 나의 관점을 비추게 되었다.


지나온 시간들에 비추기도 하고

다른 표현을 느껴오기도 하고

술 대신 차로 차분해지기도 했다.


여전히 술은 생각나고 마시고 싶지만

굳이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는


이러한 관점과 마음을 조금은 더

느끼고 알고 싶은 욕심 때문이 아닐까.


윤도현님을 통해 김광진님의 감성을 이해하고

김광진님을 통해 윤도현님의 감정을 이해하는.


취해 살아오던 삶을

젖어들며 이해하는.


이런 요즘의 나날들이

꽤나 만족스럽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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