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e (18.01.26 ~ 18.01.29)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생전 처음으로 가이드 투어라는 것을 신청해 보았다. 어차피 어디를 가도 모르는 것들이 가득한 유럽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물어서라도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싶었다. 그곳이 온갖 상징들로 가득한 바티칸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아침 일찍부터 호텔을 나와 약속 장소에 서있기를 잠시, 곧 모여든 투어 일행들과 가이드 님까지 합쳐서 대략 20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다. 성전을 수호하기 위해 견고하게 세워진 바티칸의 성벽을 바라보며 모두가 잠깐의 기다림 끝에 'MVSEI VATICANI'가 새겨진 아치형 돌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바티칸 미술관의 서막은 그 끝에 닿은 반나절 내내 벅찬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지니'라고 불리는 가이드 님의 설명이 귀에 꽂은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선명하게 흘러 들어왔다. 그렇게 처음 들은 내용은 이콘(Icon)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본디 이콘이란 성당에 비치된 종교적인 상징물들, 즉 그림이나 조각 작품들을 통틀어서 지칭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라틴어를 못 읽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으로 치면 영상매체와 같은 역할을 했던 요소들로, 장황한 설명 없이도 그 뜻을 알 수 있는 기호나 상징인 아이콘의 어원이 바로 이것이다. 가령 하느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성령의 검을 들고 있는 인물이 보인다면 수많은 선교활동을 하다가 로마 황제에 의해 목이 잘린 성 바오로(사도 바울)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식이다.
이러한 이콘들은 처음엔 신성을 강조하던 시대 분위기와 맞물려 인간성을 초월한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온몸에 화살이 꽂힌 성 세바스티아누스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도 고통이나 죽음의 공포가 서리지 않았다. 하지만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신에서 인간으로 초점이 옮겨지자 이콘들도 점점 그 표정 속에 사람의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신성한 존재임에도 지나치게 인간적이거나 관능적으로 묘사되어 신성을 어지럽힌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와 같은,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거장들의 전성기가 꽃피우게 된다.
라파엘로가 그린 「그리스도의 변용」에 박힌 황홀한 시선을 힘겹게 거두고 따라온 솔방울 정원에서 가이드 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몇 분 뒤 직접 보게 될, 흔히 '천지창조'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와 제단화인 '최후의 심판'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주어진 얼마간의 쉬는 시간. 설명을 따라가느라 감상하지 못했던 그림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싶어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 들어가 찬찬히 눈도장을 찍으며 솔방울 정원으로 돌아왔다. '천재'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의 쿠폴라(Cùpola)가 건물과 나무 사이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다음 목적지로 안내하는 듯했다.
그리스 신화를 너무도 좋아하기에 관련 사진으로 많이 접했던 라오콘 군상의 실물을 비롯한 조각 작품들을 지나 수많은 지도가 벽에 걸린 회랑을 걸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한쪽에 작게 그려진 이집트의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싣고 유럽으로 들어오는 배였다. 실제로 로마 곳곳에서 성당 십자가를 받치는 기둥으로 수많은 오벨리스크를 볼 수 있었는데 태양신의 상징이 다른 종교의 상징을 얹고 있는 모습이 다소 엉뚱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메라 세례. 교황의 개인 서재 네 면에 각각 철학, 법학, 신학, 예술을 주제로 라파엘로가 그린 프레스코화 중 철학, '아테네 학당'은 그 그림이 그려진 입장권과 함께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유명세를 치르는 중이었다.
바티칸 미술관의 끝판왕, 시스티나 성당을 끝으로 투어는 마무리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마지막 설명을 들은 뒤 우리는 해산했고 가이드 님은 감사하게도 로마의 여러 맛집 리스트까지 일러주셨다. 이제 저 대성당을 자유롭게 돌아볼 일만 남았다. 앞서 배운 여러 지식들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는 가톨릭의 심장을 받아들일 차례였다. 그 첫 순간에 마주한 것은 바로 청년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피에타'였다.
천재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다면 미켈란젤로를 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를 조각가라 불렀고 이미 돌 속에 존재하는 존재에 달라붙은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내는 일을 조각이라 생각했던 그였다. '다비드', 그리고 다음날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San Pietro in Vincoli)에서 본 '모세상'과 더불어 미켈란젤로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피에타' 역시 그렇게 그가 돌 속에서 끄집어낸 작품이었다. 인간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는 거대한 성모 마리아에 비해 초라하게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신의 위치에서 내려다보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함만이 강조되도록 설계한, 겨우 20대에 그 경지에 올라선 조각의 신.
그런 그가 전문 분야인 조각이 아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제단화를 그려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천재임이 증명된 것은 아닐까? 천지창조로 잘못 알려진, 실제로는 '아담의 창조'가 이름인 신과 아담이 손가락을 맞대는 장면은 본디 성경대로라면 입으로 숨결을 불어넣어야 했지만, 그림만으로는 동성애적인 요소로 보일 수 있어 저렇게 표현했다는 설명을 떠올리며 경이로운 눈으로 천장화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였다. 가만히 서서 얼마간 고개만 젖힌 것임에도 뒷목에 뻐근한 느낌이 가득했다. 대체 그는 저 높고 광활한 천장에 몇 년 동안이나 어떻게 제한시간 내에 그려야 하는 프레스코화를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것일까?
노년의 나이에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천장 돔인 쿠폴라는 결국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제자들에 의해 완공되어 지금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조각가이자 화가, 그리고 건축가에 이르는 예술 분야를 총망라한 천재성의 완결을 온몸으로 겪어보고자 하는 바람은 행동으로 옮아 쿠폴라의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게 만들었다. 수백 개의 계단 덕분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면서도 머릿속은 어떻게 한 인간이 이 많은 업적을 남겼을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사이 비좁고 기울어진 통로를 따라 빙빙 돌기를 반복하던 나는 이윽고 하늘에 닿았다.
이미 올라와 있던 수많은 인파에 갇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 모양새가 선명히 드러나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넓은 광장.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가 설계했다는 이 공간을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유산에서 내려다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열쇠였다. 교황의 상징이자 이 건물이 세워진 무덤의 주인, 성 베드로의 이콘이 항상 손에 들고 있는 바로 그 '천국의 열쇠'. 문득 오래전 교회에 다닐 때 수없이 보고 들었던 성경 속 유명 구절이 뇌리를 스쳤고 어느새 나는 경건한 감동에 젖어 들고 있었다.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
마태오 - 「마태복음 16장 18~19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