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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Jun 18. 2024

당근에서 산책 모임을 열었습니다

출근할 때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 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 입을 수 있는 옷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아니 작년만 해도 큰 무리 없이 입었던 옷들이 이젠 전혀 맞지 않다. 꽉 끼는슬랙스에 다리를 집어 넣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그저 숨이 막힐 따름이다.


이 옷을 입고, 어떻게 몇 시간동안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고는 배에 아무 무리가 가지 않는 편안한 고무줄 바지를 또 골랐다. 언제 이렇게 살이 쪄버린 걸까? 사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주변사람들이 쉽게 공감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교묘하게 내 지방들을 펑퍼짐한 옷 속에 숨겨왔기 때문이다.


정확히 2023년 겨울 이후로 1키로 씩 야금야금 살이 붙이 시작하더니 어느새 7키로까지 쪄버렸다. 단기간에 체중이 불어났다면 그 변화를 조금 더 빨리 느낄 수 있었겠지만, 조금씩 또 꾸준히 불어난 지방들은 나에게 적신호를 주기보단 그저 괜찮다며, 더 먹어도 된다고 나를 다독였을 뿐이었다.


이 시기엔 놀랍게도 연애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만나던 남자친구는 나에게 살이 쪘다거나 뚱뚱하다거나 하는 말을 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있는 그대로 정말 그 말을 믿었다. 오히려 나보고 귀엽다고 해줬던 그였기에 되려 거울을 볼 때마다 갈수록 귀여워지는(?)내 모습에 흐뭇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찍힌 사진 속의 내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이 모습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사탕 2개는 물고 있는 듯한 꽉찬 볼살들이나 고개를 조금만 숙여도 한움큼 잡히는 턱살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 것도, 또 찍히는 것도 싫어진 나였다.


그래! 이젠 정신 차려야지.
조금씩 살을 빼보자. 너 할 수 있잖아.
원래 날씬했던 사람이 왜 그래?


호기롭게 다짐하며, 유튜브에 다이어트를 검색해서 홈트를 하기도 하고, 아이돌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고, 케틀벨을 사서 집에서 미친듯이 휘둘러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3일 이상 지속되기가 어려웠다. 나에게 운동이란 지방을 태우는 것이 아닌 많이 먹은 날 죄책감을 좀 덜기 위한 소화의 행위였달까..?


먹고, 소화시키고, 먹고 또 소화시키는 이 굴레를 몇 달이나 반복하던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다이어트"에 집중하기 보다는 활동량 자체를 늘려보자는 것. 그리고, 잠깐 고민을 한 끝에 중고거래 앱인 당근에 “오늘 같이 산책할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올리게 되었다.


내가 거주하는 관악구의 경우, 지역 특성상 젊은 사람들도 많고 대학생+(직장인)자취생이 많은터라 동네생활 카테고리에서 번번히 무언가를 같이 하자는 글이 자주 올라왔다. 그 중에서는 저녁을 같이 먹자거나, 코인 노래방을 같이 가자는 글이 많긴 했지만 왠지 산책에 대한 수요도 있지 않을까 싶어 호기롭게 글을 올리게 되었다.


큰 기대없이 글을 올렸는데 얼마가 지나지 않아서, 3-4명 정도 꽤나 많은 사람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몇 명의 사람들에게 채팅을 보내고 약속을 잡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일부는 낯선이와의 산책에 대한 안전(?)에 대해서 염려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겁이 많은 편이라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전하게 산책을 할 수 있을까 충분히 고민을 했고, 내가 스스로 만든 몇 가지 안전수칙은 아래와 같다


1. 산책은 반드시 1:1이 아닌 2명 이상의 사람들과 함께 진행할 것

2. 산책하는 장소는 사람들이 많은 공원에서 진행할 것

3. 9시가 넘은 너무 늦은 저녁 시간은 되도록이면 피할 것

4. 산책 후에 불필요한 식사 자리는 가지지 않을 것


그렇게 호기롭게 산책에 도전했고, 일주일 정도 되는 기간 동안 나는 정확히 5번의 산책을 진행했다. 물론, 이 때 만났던 10명 남짓한 모든 이들과의 시간이 괜찮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극내향형이라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절대 입을 뻥긋하지도 않는 분도 계셨고, 나보다 말이 더 많은 분도 계셨고, 처음 만났지만 편안하게 대화가 잘 통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산책들 덕분에 나는 25분 거리에 있어서 그저 멀다고 자주 가지 않았던 동네 공원이 조금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산책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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