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을 길게 한 것도 아닌데 문득 요즘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들을 살펴보니, 전 직장 동료들이 꽤나 많다고 느꼈다. 그들은 같은 시기에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회사 생활 외에도 나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이를 가리켜 시절인연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퇴사하고도 연락이 꾸준하게 이어지는 걸 보니, 우리의 인연이 어쩌면 시절인연 그 이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회사는 커리어 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함께 얻어갈 수 있는 곳이라 믿기에, 혹시 나와 같은 신조를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회사에서 무조건 친해져야 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회사에서 만났지만, 퇴사를 하고도 꾸준히 연락을 하게 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인간적인 유대감이 느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직전 회사에서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 동료들이 몇 명있었다. 돌아보니, 우린 같은 팀도 아니었고 같이 일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묘하게 마음이 갔다. 왜 그런지 돌이켜보니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소통을 했던 시간들이 그 이유라는 생각이 들더라.
퇴근길에 회사에 대해 이야기 하며 이전 회사들은 어떠했고, 또 현재 무슨 고민을 갖고 있는지, 어떤 커리어를 고민하는지 솔직하게 터놓는 시간들을 가지니 어느순간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 아닌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는 나와 같은 동지로서 바라보게 됐달까? 그 때부터는 구직 사이트를 보다 적합한 공고가 있으면 이직을 응원하며 링크를 보내주기도 하고, 퇴근하고 일에 치여 울적한날엔 감자탕에 맥주를 마시면서 소소하게 나마 마음으로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누군가는 '회사에 입사했으니 이제 큰 걱정은 덜었다.' 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회사는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는 나로서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동료들에게 조금 더 마음이 갈 수 밖에없다.
사회 생활에 이제 막 발을 들였을 무렵, 회사에서 알게 된 한 대리님은 시간이 지나도 아직 내 머릿 속에 선명하게 기억날 만큼 주체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분이셨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프리랜서로 오래 일을 하셔서 그런지 주어진 일 그 이상으로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태도가 늘 느껴졌다. 당시 지금보다 한참 어렸던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일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문득 했던 것 같다. 당시 대리님과 오래 일을 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퇴사하고 꾸준히 연락하면서 느끼는 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는 것. 그녀 덕분에 다가오는 30대를 조금 더 멋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회사에서 만난 인연 덕에 나 역시 성장할수 있지 않았나 싶다.
회사에 다니면서, 그리고 퇴사 후에 자신감을 상실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바닥을 찍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 중 한번은 퇴사를 하고, 대학교 편입을 준비하던 때였다. 준비 기간이 3개월 밖에 되지 않아 마음에 여유는 없었고, 당시 오랜 기간 만나던 남자친구와도 이별을 결심했기에 그 상실감은 이루 말로다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이런 내 마음을 알았던 것인지 회사 동료였던 한 주임님이 나에게 건넸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00씨, 어디서 들었는데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같은 상실감을 느끼는 때가 되려 더 많은 것을 채우고 성장할 수 있는 시기래요. 힘내요! 당 떨어지면 내가 맛있는 디저트 언제든 사줄게요'
당시, 이 메시지를 받고 어찌나 큰 위로가 되던지 그녀가 보내준 말을 포스트잇에 적어 수험 생활 내내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그리고, 마음이 불안할 때 마다 지금 느끼는 이 상실감이 분명히 훗날 더 큰 성취감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믿으며 외로움과 두려움을 묵묵히 이겨냈던 것 같다.
되돌아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총 16년 간 학교에 몸담아 공부를 했지만, 그 시간보다 훨씬 짧은 기간동안 회사를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30대가 되서 20대의 나의 삶을 돌아보면, 결국 수많은 동료들이 해줬던 따뜻한 말과 격려 덕에 성장했다는 걸 조금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존재 만으로 든든했던 사수들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기를 작게나마 소망하며. 올 연말은 치열하게 달려온 나에게 채찍보다는 잘해왔다는 격려의 말을 스스로 많이 건네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