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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ZY Dec 27. 2023

고통 구경하는 사회

고통 구경하는 사회, 김인정

최근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 카메라를 구입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여행을 하며 영상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영상을 낯설어하지 않고 자꾸 찍고 편집하다 보면, 브이로그까지는 아니지만 언젠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영상 자료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가지고 찍어 보니 카메라 촬영 기법도 모르는 완전 왕초보 사용자이지만 그저 많이 찍어보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갖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작은 목표를 설정한 셈이다. 작고 귀여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내가 보는 시선들을 기록, 기억화 시키기도 좋은 것 같아 새로운 취미로 굳혀보려고 한다. 

2023년의 크리스마스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내가 머무는 미국에서 가까운 '크리스마스 인 더 공원'을 찾아 나섰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설레는 조명과 트리, 기분 좋은 자연의 경관들을 담으며 카메라 구도법도 익혀볼 심산이었다. 

큰 볼 장식, 알록달록 화려한 조명들, 빛나는 리스, 반짝이는 수많은 트리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며 찍고 또 찍었다. 그중에 환하게 비치는 노란색 트리가 눈에 띄었다. 

'REMEMBER SEWOL' 

카메라에 담기 전 묵념을 했다. 트리를 발견한 한국인 부부께서도 나와 아이들 옆으로 다가와 함께 묵념했다. 렌즈를 통해 비친 노란색 트리는 금빛으로 더욱 빛나는 것만 같았다. 빛이 외곽선을 따라 퍼지듯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더니, 잠시 카메라를 끄고 걷고 싶어지게 했다. 



194 South Market Street Drive Thru:, 799 Phelan Ave, San Jose, CA 95113 미국




먹먹하면서 겸허해졌다. 동시에 드는 생각은 '내가 카메라를 들고 이 트리를 담아낼 자격이 있는가?'였다.  

확실히 카메라를 온종일 들고 다닌다 해서 내가 담고 싶은 장면들을 온전히 다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보면 기분 좋아지고 행복함을 전달하고 싶은 영상만을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일 뿐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속들이 파고들다 보면 마냥 즐겁고 설레는 일들만 가득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

비평가 존 버거가 말했듯이, 타인의 고통을 보고 난 뒤 총격을 개인의 '도덕적 무능'으로 연결해 그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될 필요도 없다. 때론 죄책감이라는 통증을 넘어서야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는 길이 열린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나의 것이 아닌 고통을 보는 일에는 완벽함이 있을 수 없으므로,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미욱한 애씀의 흔적을 조금씩 용인하면서라도 움직이기를 바라기에. 

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오늘도 아이들과 산책하는데 마주친 홈리스(노숙인)들의 행동들이 참 기이해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상체를 구부려 엉덩이를 자꾸 들이밀거나 눈의 비정상적인 초점, 옆으로 꼬구라지기 직전으로 기대어 서 있는 모습들.

갑작스럽게 적나라한 현실의 장면을 목격하게 될 때면, 나름대로 담력있다고 생각하는 나마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때가 있다. 자꾸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정작 시선을 주기가 꺼려진다고 할까? 

 '그저 세상의 한 일부의 모습일 뿐이야.' 하고 넘기고 싶은 지극히도 씁쓸한 태도를 내가 보이고 있었다. 

남편은 시간이 지나 이렇게 말했다. 

'눈 마주치며 인사말을 건네는 정겨운 사람들이 많은 나라지만, 묘한 긴장감을 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이 참...' 

말끝을 흐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이 뒷말을 흘린 건지, 내가 귀를 닫았는지 모르겠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통해 목격과 구경, 공감에 대한 재해석, 고통의 전달자, 도덕적 좌절감, 두려움 등에 대해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최근 어떤 강의에서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실험 이야기를 들은 것이 떠올랐다. 

직접 고통을 경험하여 또 아플까 봐 염려하는 ‘두려움’과 옆에서 아픈 사람들을 보며 자신은 그 고통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 고통이 도래함을 느끼고, 그 고통에 대해 상상하는 ‘불안’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과연 두려워하는 것일까? 불안한 것일까? 


이 글을 쓰기 직전에 '크리스마스 새벽의 화재 사건'에 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화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인 고통을 느꼈을지, 보고 있는 우리들은 또 얼마나 불안감을 느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불편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이 대다수에게 '불안감'을 안겨주었듯이 재난과 사고, 범죄 사례 등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에 불안감을 전하면서 더욱더 편협해지는 분위기가 되지는 않을지 염려스러웠다. 정말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사회 분위기는 어떤 흐름을 보일지 막막함을 느낀다. 동시에 당장 나 자신부터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카메라'나 '고통의 전달자'의 존재로 머무르게 되지는 않을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p.s. 요즘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이슈들을 더 엮어서 써보고 싶었으나 다 담지는 못했다. 

늘어나는 마약과 관련한 이슈, 샌프란시스코 방문을 꺼리게 되는 이야기들.. 언젠가 이야기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사람들 사이를 걷다 보면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이 

보이지 않는 문의 외시경을 바라보는 

시선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은 기분 말이다. 

나도 그저 구경하는 사람으로 

머물고 있다는 점이 많은 생각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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