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거나 믿거나 초월하거나
오래전 강원도 여행길. 한밤중. 아주 저만치 전봇대에 매달린 가로등이 듬성듬성 서있는 도로가 보이고,
딱 차 한 대 폭의 농로를 따라 도로를 향해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아무 조짐도 없이 전조등이 나갔다. 미등조차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미약한 조짐이라도 있었을 테지만 알아채지 못했을 터였다. 타인, 내 몸, 온 세상이 나에게 보내는 무수한 신호에 둔감했던 삶이 사소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난감한 사달을 불러왔다 싶었다.
이게 바로 '칠흑'이구나!
한 번도 호랑이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눈앞에 호랑이가 나타나는 순간 알아채지는 동물이 호랑이라더니 이 어둠이 바로 그런 어둠이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 어둠이 주는 두려움이 이토록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밝음이 사라지기 전 농로는 곧았다. 그대로 나아가면 될 일이었다. 손으로 더듬어 바퀴가 정면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발로 쓸어 바퀴에서 농로 경계까지 거리를 가늠했다.
운전대를 잡았다. 차가 움직였다. 바퀴가 땅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농로의 경계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로 바뀌는지 집중해서 들어야 했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잠시 기어를 중립에 놓고 천천히 숨을 쉬며 생각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알거나 믿거나 초월하거나.
1. 나는 안다. 불이 꺼지기 전 내가 본 농로는 곧게 뻗어있었고 내 차는 정면을 향해 똑바로 서 있다.
2. 나는 믿는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농로도 계속 곧게 뻗어 있을 것이다.
3. 나는 초연하다. 길이 곧거나 말거나, 차가 똑바로 나아가거나 말거나.
온몸에서 진액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 되어서야 어둠에서 벗어났다.
분명히 알기에 지력은 늘 부족할 것이고, 초연하기에는 버리지 못한 욕심과 미련이 늘 남아있을 테고, 그나마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일단 의심을 눙치고 믿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