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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eader Oct 14. 2023

아무튼, 쓰자

주간 한지영 4화: 이슬아 작가의 <끝내주는 인생>을 읽으며

이슬아 작가의 새로 나온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을 읽고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아껴가며 머릿속에 필사라도 하듯 한 자 한 자 꾹 꾹 눌러 읽는다. 마치 다 읽고 나면 나도 이슬아처럼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으로 공부하듯이 읽는다. 와~ 이런 느낌을 이렇게도 표현하는구나! 이 두 단어의 조합이 참 잘 어울리네! 어쩌면 이렇게 심각한 얘기를 심상하게 써서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을까! 낄낄낄 이런 유머가 나오는 브레인은 따로 있나! 등 등. 감동적인 문장, 독특한 표현, 재미있는 구절, 다양한 이유로 줄 긋느라 진도가 안 나간다. 


나는 이슬아 작가를 글에서 보다 작가 사람으로 먼저 알았다. 내가 처음 이슬아 작가를 만났던 게 어디더라. 아마도 팟캐스트 방송 중 하나였을 것 같다. 아니 세바시에 강의였나? <일간 이슬아>를 발행하게 된 이야기를 강의에서 들었는데 아니 이렇게 쿨하고 빛이 나는 젊은 작가가 있나 하고 쏘옥 반하고 말았다. 글만 써서는 먹고살기 힘든 세상, 가만히 앉아 이 빌어먹을 SNS세상 탓, 책 안 읽는 인간들 탓만 하고 있지 않고 스스로 여러 갈래 길을 개척한다. 배달 광고지 같은 ‘일간 이슬아’를 창간하여 매일 배달을 하고 일인 출판사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글을 쓰며 살 수 있도록 만들고야 만 이 작가가 멋있다. 단지 이런 이유만이라면 사랑이 오래갈 수는 없겠는데 글은 또 얼마나 맛깔나게 잘 쓰나.


처음으로 읽은 이슬아 작가의 책은 <아무튼, 노래> 다. 음 노래? 라니 의외네 (동생 찬희 씨가 가수인지도, 함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지 전혀 몰랐다) 하며 읽기 시작했다 앉은자리에서 후루룩 다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역시 역시! 글도 반짝반짝 빛나던 사람하고 똑같이 빛이 났다. 나도 이런 글 쓰고 싶다 싶다 싶어어어… 그때부터 하나둘씩 작가의 책을 챙겨 보고 있다. 나는 따라 쓰고 싶은 작가들이 수두룩 하다. 내가 좋아하는 몇몇 작가의 글은 문체에 집중해서 읽기도 한다. (내용이 탁월한 것은 당연하고) 대가의 글을 따라 하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스타일의 글이 나오지 않을까 희망하면서.


한데 마음을 끄는 글은 단지 멋진 언어적 표현이나 스타일만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슬아 작가는 주변 모두의 삶에서 ‘끝내주는 인생'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졌다. 세상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숨어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끄집어낸다. 그의 눈을 통과하면 길거리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멋있고,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다고 늘 불평하는 옆집 아저씨 인생도 ‘끝내주는 인생’으로 변모될 수 있다. 인생을 바라보는 작가의 깊은 시선이 담겨 있는 진심이 고대로 내게 와닿았다. 딸뻘의 젊은이가 쓴 글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 자신 돌아보기.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성찰하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글을 쓰며 배운다. 잘 쓰는 것도 재미있게 읽히는 글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글을 통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일. 그런 나와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다. ‘일간 이슬아’를 몇 년 동안 발행 하였는지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쓰기를  꾸준히 해내온 사람의 내공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쌓이고 쌓여서 닦아온 글들이 보석 같이 빛을 내며 이 책에 담겨 있다. 


나는 글이 안 써지네, 못쓰겠네, 재능이 있네 없네 이런 생각을 싹 치워 버리기로 했다. 일간은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편 주간은 하자고 맘먹었으니 일 년이라도 아니 몇 개월이라도 해본 뒤에 투덜대자 맘먹었다.


그리고 일단 끝내기, 피리어드! 마침표 찍고 발행하기! 끝!


다음 이야기가 무엇인지 할머니도 나도 모른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러오고 할머니의 백발과 나의 흑발이 동시에 살랑인다.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도 들린다. 나는 무대에 서서 수십 갈래로 뻗어나가는 내 인생을 본다. 그중 살아 볼 수 있는 건 하나의 생뿐이다. P29
시간이 흐르자 눈물 대신 하품이 났다. 친구의 사정은 슬펐지만… 슬픔도 지루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p34
내게 반해버린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 남의 힘을 빌려서 겨우 자신을 사랑하는 일. 그런 구원이 좋은 연애에서는 일어난다. p35

p.s. 책 앞부분에 본문의 내용과 상관없는 듯한 이훤 시인이자 사진작가의 포토 에세이 ‘내 손을 떠나는 이야기’ 실려 있어서 조금 의아했는데 며칠 전 두 분의 결혼식 소식을 인스타에서 보고 머리를 탁 쳤다. 이렇게 예쁜 커플이 있나. 나는 이런 결혼식 보면 눈물이 난다 자꾸자꾸 난다. 친정엄마도 아니면서 주책없이 인스타 보다 울게 뭐람!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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