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한지영 5화: 2023 Long Beach Marathon을 마치고
OCT 15, 2023 완주 시간 2:34:22
네 번째 하프 마라톤이자 두 번째 롱비치 마라톤을 무사히 완주했다. 무 사 히, 무 탈 하 게, 사 고 없 이 ‘완주’하기만을 목표로 극도로 조심하며 달렸다. 작년에 생애 처음으로 달린 바로 이 마라톤에서 넘어진 데다 연습 때도 종종 넘어지고, 겨우 삼 주 전에 10K race 도중 또 넘어져 잘 넘어지는 사람으로 찍혀 클럽 멤버들과 가족들의 우려가 컸다. 전에 넘어진 건 찰과상 정도이고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크게 다친 데는 없어서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좀 허당이야, 앞으로 조심해야지, 하하하 하고 웃으며 넘어갔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넘어진 건 얼굴을 시멘트 바닥에 부딪치는 바람에 이빨에 금이 갔다. 턱도 어딘가 빠진 것처럼 음식 씹기가 힘들었다. 얼굴은 다행히 선글라스가 커버를 해주어 상처가 심하진 않았다.
더럭 겁이 났다. 달리는 중에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순식간이고 (모든 사고가 다 그렇지만) 몸이 컨트롤 안된다. 더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첨으로 들었다. 행여 이빨이나 갈비뼈가 부러지기라도 했다면.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뇌진탕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운동에 비해 달리기는 안전한 운동인 줄 알았는데 치명상을 당할 수도 있다니! 오히려 안 하니만 못 한건 아닌지라고 속으로 곱씹으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건강을 위해 시작했는데 몸을 상하게 하는 건 안될 말이지. 평소에 하는 달리기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굳이 마라톤에 출전할 필요가 있을까. 나가더라도 풋볼 선수들처럼 얼굴 가리는 헬멧도 쓰고 중무장을 해야 하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이번 마라톤을 미리 일 년 전 어얼리 버드 세일 때 등록을 해놓지 않았다면 출전할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시작하기 바로 전 선배 러너 한분이 자신도 많이 넘어졌다고 하시며 넘어진 스토리를 풀어놓으신다. 한 번은 워터 스테이션에서 물을 받아 마시는 도중 어느 러너가 멈추지 않고 물 컵을 받으며 이 분을 밀쳐서 좍 미끄러져 넘어진 적도 있다고 했다. 세상에 그렇게도 넘어질 수 있구나! 얘기해주어 정말 고마웠다. 달릴 때는 물론이고 물 받을 때도 조심조심 얼른 받아 옆으로 빠지며 특별히 더 주의를 기울였다. 이번 대회에 18,000 명이나 참가했다고 한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13.1 마일 달리는 내내 예민하게 나의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보고, 듣고, 느끼며 달렸다. 작년에 넘어졌던 그 지점도 눈에 띄어 넘어지던 순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반복되면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았다. 천만다행이게도 무사히 완주했다. 기록? 애초에 PR (Personal Record) 에는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기록 생각 안 하고 길바닥. 주변 경관, 사람들, 내 몸에 집중해서 여유를 가지고 달렸다. 2시간 34분 동안 나와 수많은 대화를 하고 몇 번 넘어졌다고 벌벌 떠는 나를 꾸지람하는 대신 계속할 수 있다고 이렇게 한 발 한발 나아가면 된다고 낯간지러운 응원도 했다. 마지막 피니쉬라인을 밟을 땐 힘차게 내디뎠다.
어쩌면 달리기 하다 몇 번 넘어진 거 가지고 왜 이리 호들갑이냐 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타고난 몸치인 데다 움직이거나 밖에서 하는 동적인 액티비티를 싫어하는 성향이다. 위험할 순간에 노출되는 일이 없으니 다칠 일이 거의 없었다. 어렸을 때도 놀다가 다쳐 부모님을 식겁하게 해준일이 한 번도 없었고 병원이라고는 건강검진, 출산 때 간 게 다다. 운도 좋았겠지만 그만큼 위험한 상황 같은 것은 살살 잘도 피하며 살았다. 어려서나 지금이나 집에서 꼼짝 안 하고 책이나 영화 보는 걸 젤 좋아한다. 어디든 한자리에 앉으면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엉덩이에 접착체 붙이고 다니냐고 늘 놀림받을 정도로. 그런데다 겁이 무지 무지 무지 많다. 내가 운동을 지지리 못하는 이유도 다 겁이 많아서 그렇다. 공이 무서워 구기운동은 못하고 물이 무서워 수영도 못하고., 속도가 겁나 자전거나 스키는 물론이고 미끄럼도 못 탄다. 운동뿐만 아니라 길치라 모르는 곳에서 길 잃고 헤맬 까 무서워 혼자 여행도 못하고. 동물을 무서워해서 공원도 잘 못 간다. 혼자서는 웬만하면 아예 밖을 잘 안 나간다. 아휴! 남편이 불편한 인생이라고 불쌍히 여긴다. 그러니 나를 잘 아는 가족들과 옛 친구들은 내가 로드 러닝을 하고 마라톤에 나간다고 하면 절대 안 믿는다. 천지가 개벽할 일 정도로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이런 내가 못 마땅해서 어떻게든 극복하고 바꾸어 보려고 애도 많이 썼다. 다음 생애나 가능할 일이다 싶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편히 살기로 했다. 그렇다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안주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항상 추라이는 해보겠다는 열린 마음이다. 뒤늦게나마 가만히 앉아 책 읽는 것만큼이나 좋아하게 된 달리기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다.
달리기를 왜 하는지 잊었느냐, 다리 근육을 더 튼튼히 키워서 누가 밀더라도 끄떡없게 하자. 기술적으로 넘어질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니 연구해 보자. 이빨 부러진 것도 아니고 부러질 뻔했다고 의기소침하지 말자. 열심히 연습해서 언젠가 풀 마라톤을 한 번은 달려 봐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얘기를 나와 두런두런 나누며 두 시간 반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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