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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eader Nov 04. 2023

버스터와 당구 1

주간 한지영 7: 내 평생 나보다 더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을 못 만났다

Zoophobia: an extreme fear of animals 동물 공포증


버스터와 당구는 나의 선천적 동물 공포증을 치유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반려견들이다. 조금 덜 무서워하게 되었다는 거지 아직 무서움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도 작은 사이즈 강아지만 한해서이고 다른 동물들에 대한 공포는 아직도 심하다. 선천적이라고 한건 나의 기억이 시작되는 때부터 무서워했으니 타고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또 한 가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이라고 의심할 만한 점은 우리 이남이녀 사 남매가 다 동물을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무서움 정도도 다 비슷비슷하다. 다만 커갈수록 나는 점 점 더 심해졌다.


아버지 쪽에서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어머니는 동물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좋아하시고 아버지는 자신은 무서워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싫어하는 건 확실하다. 새나 특이한 희귀 동물 사진이 TV 화면에 뜨면 우리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눈을 감지는 않지만 ‘에이 징그러워!’ 하며 채널을 돌리시는 일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리고 우리들처럼 육식을 싫어하신다. 아버지와 사 남매는 식당에서 감자탕이 말 그대로 감자로 만든 국인줄 알고 시켰다가 깜짝 놀라 못 먹고 나온 경험이 한 번씩 있다. 우리들이 먹는 고기는 극소량의 소고기뿐인데 아주 바짝 잘 구운 양념갈비, 양념불고기, 스테이크 정도이다. 고기 맛을 모르고 양념 맛에 반찬으로 먹는 수준이라 스테이크도 소스가 필수이며 썰다가 핑크 색이 보이면 비위가 상해 포크를 놓는다. 아버지 쪽임이 틀림없다.


우리 집에서는 당연히 애완동물을 키운 적이 없다. 심지어 그 흔하디 흔한 초등학교 앞에서 박스에 수십 마리씩 담아와 팔던 노란 병아리도 집에 들인 적이 없다. 처음에 아이들이 몰려있어서 뭔가 하고 봤다가 기절 초풍하고 도망간 사람이 나다. 동물 중 조류를 가장 무서워하고 싫어하는데 재래시장 가는 걸 힘들어했다. 닭들이 오글오글 모여있는 닭장이나 목이 잘리고 껍데기가 벗겨져 매달려 있는 장면을 마주치는 게 끔찍했다. 그런 날 이면 꼭 악몽을 꾸었다. 닭이나 새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이 들어 찬 골목길 한가운데 조그만 돌이 하나 있고 나는 그 위에 위태위태하게 서있다. 어느 순간 발이 미끄러지며 그 새들 위로 넘어진다. 땅에 (새위에) 아슬아슬하게 닿기 전에  ‘아 악!’ 소리치며 깨는 꿈이다. 이런 류의 꿈은 참 많이도 꾸었다. 


그러니 우리 이남이녀 사 남매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치킨을 비롯하여 터어키나 오리 등 조류를 절대 먹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도 사 남매의 배우자들과 모든 자녀들은 다 치킨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 동물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페어 fair 같은 데서 어린이들과 농장 동물들을 가까이 체험하게 해주는 이동식 패딩 주 padding zoo 엘 가면 우리 안에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쓰다듬는 건 사 남매의 배우자들이다. 언니와 나 남동생들은 멀리 울타리 밖에서 손 흔들고 사진 찍는 담당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혹시나 엄마의 영향을 받아 선천적이지 않음에도 동물 공포증이 생기게 될까 우려가 컸다. 내가 빨리 늙는다면 그 당시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반려견을 마주치면 소리치거나 도망가지 않고 태연한 척하느라 매번 내 목숨이 몇 년씩 감수되어 그럴 것이다. 모성의 힘이 아니면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닌 모성이 그리 크진 못했는지 제대로 발휘 못 할 때도 있었다. 연못 바로 옆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을 때였다. 세 살쯤 된 큰 딸은 저 멀리서 놀고 있고 몇 개월 안 된 둘째를 유모차에 태워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가려는 도중 연못에서 나온 오린지 거윈지 여러 마리가 나를 향해 뒤뚱뒤뚱 걸어오는 게 아닌가. 나는 당황해서 빨리 도망가려 하는데 바퀴가 모래에 빠져 옴짝달싹 안 했다. 얘네들이 사람도 무서워 안 하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덤비듯 꽥꽥 거리며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것이었다. 큰 애를 찾아 도움을 청하고 어쩌고 할 여유도 없이 아이를 유모차에 내버려 둔 채 혼비백산하여 달아났었다. 잠시 피신했다 금방 되돌아갔고 아이는 여전히 평화 롭게 유모차에 앉아 있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흐르고 심한 죄의식에 시달린다. 요즘도 그때 얘기 하며 둘째에게 엄마가 미안했다고 백배 사죄하는데 딸들은 도망가는 엄마 모습이 상상된다며 깔깔대고 웃는다. 트라우마는 나만 생겼다. 지금은 딸들도 남편과 함께 동물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보디가드다.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커서도 이런 일이 부지기수였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개나 고양이등을 마주치게 되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일이 꽤 많았는데 어찌어찌 그 상황을 벗어나면 벌벌 떨며 엉엉 울었다. 다 큰 애가 오줌까지 질질 싸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랬다 하더라도 창피한 줄도 몰랐을 것이다. 죽다 살아난 심정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포비아가 점점 더 심해졌다. 미국에서는 길거리 걸어 다닐 일이 별로 없으니 혼자서 공원이나 동네 산책을 안 하면 되니까 그나마 좀 나았다. 그래도 별의 별일을 다 겪는다. 차를 주차하고 내리려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차옆에 앉아 있어서 오도 가도 못하고 한참을 차 안에 앉아 있는 일은 대수도 아니다. 트라우마가 된 스토리를 나열하지면 한도 끝도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이 안 키우는 집보다 훨씬 많고 그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회에서 동물 포비아기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못 하는 사람이 많다.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조금씩 가까이하면서 친해지라는 둥 무조건 한 번 키워 보라는 둥 조언도 많이 한다. 나는 일단 동물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가 없다. 목줄을 끼우고 누가 잡고 있다고 하더라고 모든 신경은 그쪽으로 쏠리고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다. 가까이 가면 내가 죽을 것 같다.  한 번은 포비아 치유에 최면이 효과 있다고 해서 받아 보긴 했다. 몇 번 시도했는데 최면사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최면이 안 걸려서 계속할 수가 없었다. 불편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뭔가를 해보려는 시도가 더 공포증을 심하게 만드니까. 반평생을 이러고 살았는데 얼마나 더 살겠다고 하며 거의 포기 한 채 받아들이고 잘 피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중년이 되면서 사 남매 중 나만 빼고 다들 슬슬 강아지 정도는 조금 덜 무서워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 세상에! 우리도 정상인으로 사는 게 가능할 수 있다고? 




*다음 주 금요일 2 탄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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