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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eader Jan 25. 2024

'우리가 누굽니까, 못할 게 뭬입니까'

책감상 l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_ 손기정


내가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꿈꾸는 러너 북클럽 1월 선정책이 아니었다면 읽을 생각도 안 할 책이겠지만 혹 읽었다 해도 지금과 같은 감동은 결코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훌륭하신 어느 한 인물의 전기 정도로 읽어 내려가지 않았을까. 지금은 손기정뿐만 아니라 마라톤을 대하는 나의 자세도 바뀌었다. 


읽는 내내 내가 태어나 이제껏 살아오며 운동과 운동경기에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가를 다시금 깨달았다. 올림픽이든 뭐든 어떤 운동 경기를 관심 있게 제대로 본 일이 없다. 학교 때 큰 운동장에서 하는 전국체전 같은데 단체로 카드섹션 응원을 몇 개월씩 연습해서 가기도 했는데 그때 운동 경기를 보기나 했던가. 무슨 경기를 응원하러 간 건지 생각도 안 나고 공부 안 하고 논다고 신나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일에 바빴을 것이다. 심지어 전 세계가 열광하는 올림픽 경기도 TV 앞에 앉아 느긋이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특히 마라톤이 올림픽의 꽃이라는 것도 몰랐고 마라톤 금메달이 그게 그렇게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끊임없이 칭송받을 대단한 성취라는 것도 알리 없었다. 운동을 못하니 시합, 경주 이런데 안 껴주는 건 당연하고 구경하는 데도 도통 관심이 없었구나 싶다. 한마디로 운동에 관해선 남편의 표현에 의하면 보통 ‘상식’이라고 하는 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이다. (이런 내가 하프마라톤을 두 번 완주하는 기적 같은 일을 하고 나니 남편도 신기해하다 자신도 달리기를 해보기로 한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하프 마라톤을 지금까지 네 번 뛰었는데 음 내가 몇 등인지 눈여겨보지 않은 건 물론이고 그 경기에서 누가 1등 2등을 한지도 관심 가져 본일이 없다. 나의 완주 시간만 챙길 뿐이었다. 그러니 올림픽 금메달, 세계 신기록을 목표로 달리고 이루어 낸 손기정이 이제는 사람이 아닌 신처럼 보이는 게 당연하다. 그것도 지배를 받던 나라의 국민으로. 손기정이 함께 달리던 영국의 하퍼 선수를 물리치고 홀로 선두에 달리다 스테디엄으로 들어서는 순간 들었을 함성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리게 만 해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앞으로 내가 마라톤 피니쉬 라인을 밟는 순간마다 이 순간을 상상해 볼까 한다) 실제 그 당사자는 어떠했을까. 반환점을 돌 때만 해도 중간을 달리던 남승룡도 후반에서 앞서가는 사람 다 제치고 3등을 한건 또 얼마나 기적적인가. 모두가 열광하던 환희의 순간에 1위와 3위 우승을 하고서도 제대로 기뻐하지 못하고 시상대에서 침울하게 고개 숙인 두 선수의 모습은 애잔하고 마음이 아팠다. 남승룡은 손기정이 1등 한 것보다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가릴 수 있는 묘목을 수여받은 것이 더 부러웠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옷을 확 찢어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손기정의 삶에는 우리나라의 슬픈 근대의 역사가 훤히 다 보인다. 민족의 아픔과 울분을 생각하고 울컥울컥 분노가 치밀다가 또 이렇게 반세기도 안되어 강국으로 우뚝 선 한국인의 저력에 자랑스럽기도 했다 아무리 개인주의자라 하더라로 우리는 결국 지금 살아가는 이 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고작 한 점도 안 되는 것이다. 


1936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금메달 손기정은 온 국민이 다 아는데 도 3등 동메달 남승룡의 존재는 왜 몰랐을까. 나야 ‘상식도 없는 사람’이라 그렇다 치고 관심 많은 남편도 몰랐다는 게 이상하다. 내 또래에 한국에서 학교 다닌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 그리고 1947 보스턴 마라톤은 어떤가. 나라의 주권도 없어서 내 나라 이름을 걸고 참가하기도 힘들고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여정도 만만치 않았던 시절 세계 제일 강대국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마라톤에서 1등에다 세계기록까지 깬 서윤복의 존재는 들어 본일이 없는가. 보스턴이라면 실력이 인정되어야 달릴 수 있는 전 세계 마라토너들의 로망인 마라톤인데. 난 달리기는 요즘 대회를 휩쓸고 있는 아프리카 케냐선수만 잘하는 줄았았다. 손기정 이외에 우리나라 사람이 달리기를 잘하고 어디 출전해서 등수 안에 들 수 있다는 상상도 못 했다.


베를린 마라톤 1등 기록 2시간 25분 초- 이건 내가 하프마라톤을 뛴 기록보다 더 빠르다 내가 뛴 것의 두 배 속도로 2시간 이상을 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내가 몇 번 죽었다 깨어나도 안될 일이다. 마라톤도 다를 어떤 스포츠나 예술 분야처럼 재능이 있어야 한다. 99%의 노력과 마지막 1%의 재능이 없다면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이 될 수 없다. 지난 11월 빅베어 마라톤에 참여하는 클럽 회원들 응원을 위해 갔다 풀 마라톤을 3시간 대에 들어오는 선수들을 보았는데 모두 근육질에 어느 다른 올림픽이나 프로 운동선수 다운 체격을 갖추었었다. 나를 비롯하여 마라톤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뒤에서 걷다 뛰다 하며 들어오는 선수들만 보던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하니까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며 만만하게 볼 운동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달리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일등을 안 해도 일등을 한 것만큼이나 혹은 더 크게 완주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얕잡아 볼 운동은 아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맞다. 10,000명이 달려 7358등이지만 아무도 부끄러워한 거나 애통해 사지 않는다. 피니쉬 라인을 밟은 모두에게 메달을 준다. 창피하기는커녕 완주한 스스로에게 대견하고 뿌듯해서 어쩔 줄 모른다. 결국에는 어느 다른 누구와 경쟁하는 게 아니고 나 자신과의 경주에서 이긴 것이니까. 그러니 자신과의 싸움은 물론 전 세계 다른 위대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정상의 자리에 선 손기정이 더더욱 위대해 보이고 자랑스럽다. 


“우리가 누굽니까? 못할 게 뭬입니까?”


바로 이 두 마디가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기적 같은 일을 이루어 낸 손기정의 저력이다. 이 정신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손기정은 비록 나라를 빼앗긴 핍박받는 민족임에도 긍지를 가지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기에 이룰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IMF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자 참여한 광고 캠페인의 문구이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려 함이었고 손기정의 고향 신의주 사투리가 무심결에 튀어나와 더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그 광고를 본 일이 없지만 마치 바로 내 앞에서 내게 일침 하시는 듯 생생하게 들렸다. 자주 별거 아닌 일에도 실망하고 좌절하고 주저앉아, 자존감이 쉽게 바닥을 치는 내게 이 문구를 꼭 담아두고 그때마다 들려주고 싶다.

남승룡은 손기정의 1등 보다 일장기를 가릴 수 있는 묘목을 가진 게 더 부러웠다고 한다 (사진 출처-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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