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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eader Feb 10. 2024

불멸의 사랑을 꿈꾸던 열여섯 소녀를 생각하다.

책감상 The Song of Achilles_Madeline Miller

엄마는 책 읽는 일이 세상에서 젤 재미있고 딸들은 책 보다 재밌는 일이 더 많다. 그런 딸들이 어쩌다 책을 잡으면 웬만하면 내 취향이 아니라도 나도 함께 읽고 수다 떨기를 좋아한다. 대학생이 된 후 슬슬 책 읽기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큰 딸이 이 책을 읽고 엄마에게 강추. 엄마가 읽고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고 하는 데 어찌 안 읽을 수 있으랴. 


며칠 만에 휘리릭 읽을 만큼 가독성이 높은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이다. 트로이 전쟁이 배경인 ‘일리아드’의 내용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렸다. 아킬레우스와 패트로클로스의 사랑이야기다. 아킬레우스 하면 내게는 영화 <트로이>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를 한 후 그냥 ‘아킬레우스 = 브래드 피트’가 되었다. 더군다나 나는 신의 창조물 중 가장 멋있고 잘생긴 사람이 브래드 피트라 생각하는 사람이라 더욱 애절한 마음으로 읽었다. 


일리아드에 아킬레우스가 패크로클로스의 죽음을 좀 도가 지나치다 할 정도로 애도하는 장면이 있어서 그들이 친구 이상의 관계가 아닐까 하고 나도 생각한 적이 있다. 바로 이 부분을 살린 이 둘의 불멸의 러브스토리다. 자칫하면 유치하게 흐를 수 있는 내용이 작가의 고대 라틴과 그리스문학 전공 배경이 있어서 그런지 백그라운드 스토리 골격이 탄탄하게 받쳐주어 전혀 유치하지 않고 흥미진진했다. 게다가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가의 문장들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메마른 중년여인의 감성을 한 올 한 올 일깨워 가슴 뜨겁게도 하고 사춘기 소녀처럼 엉엉 울게도 했다.


이미 끝을 알고 있는 스토리이지만 혹시나 작가가 살짝 트위스트 하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딸에게 물어보았는데 우리가 다 아는 결말로 끝나긴 하지만 실망을 하지 않을 거라는 애매한 힌트를 주었다. 그 말이 맞았다. 실망 안 하고 훌륭한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다 읽고 책을 덮으니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 심취하던 딱 순정 만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정 만화라고 하면 약간 소설을 폄하하는 것 같지만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순정만화로 사랑을 배워 그렇다. 사랑이야기 하는데 그리스 신화만큼 더 적합한 게 또 어딨겠나. 순정만화에 빠졌던 사춘기 소녀는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었다. 운명적이나 이루어질 수 없었던 비극적인 사랑, 다시 태어나도 극적으로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 끝끝내 이루어지고야 만 사랑이야기에 열 올리던 시절을 떠올리고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엄마도 이 책을 읽고 많이 울었다는 얘길 듣고 열광하는 딸과 한참을 수다 떨었다. 젊디 젊은 이십 대에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은 불멸의 연인들 사랑이야기와 분명 이런 비슷한 로맨스를 가지고 결혼하였겠으나 연애가 일상이 되고 연인이 가족, 동지가 되어감을 당연시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지극히 편안한 사랑? 에 대하여. 엄마가 그 나이 때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사랑에 대한 환상도 없어 보이는 딸은 자신은 결혼 안 할 거라고 펄쩍 뛴다. 그래 엄마랑 오래오래 함께 살자라고 말하고 속으로는 그 나이에 한 번쯤 해보는 말이려니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 갈지... 이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구나. 누구와 어떤 삶을 살아가든 나는 언제든 함께 수다 떨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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