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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Mar 25. 2021

식물인간 이송 작전

3월의 내과 근무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10층 병동에서 환자가 전원을 가야 하는데 킵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킵(keep)’은 마시다 남은 와인을 보관해달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병원에서는 상태가 안 좋은 환자를 옆에서 지킨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보통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가 잠시 중환자실을 벗어나 검사를 받거나 하는 경우에 킵이 필요한데, 일반 병동 환자는 킵이 필요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의아한 마음으로 병동에 도착했더니 내과 교수님이 레지던트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그렇게 됐다고?” 교수님이 말했다.

“네, 일단 인턴 선생님 킵해서 보내려고 합니다.” 레지던트가 대답했다.

그때, 레지던트가 나를 발견하고는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선생님, 환자가 B병원으로 오늘 무조건 전원 가야 되는데요, 아침에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서 킵 좀 부탁드릴게요.” 레지던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은 잘 모르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자네, 사망 선고할 줄 알지?” 옆에 있던 교수님이 말했다.

학생 때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잠시 고민하다가 ‘네’ 대답했다.

“가다가 혹시 돌아가시면 사망 선고하고 그대로 가면 돼. DNR이니까 괜히 차 돌릴 필요 없어.” 교수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교수님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지?’ 생각하면서 병실로 갔다. 빼빼 마른 할머니 환자가 코에 산소가 나오는 튜브를 건 채로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연결된 모니터에는 혈압이 약간 낮긴 헸지만 나름 안정적인 바이탈 사인이 표시되고 있었다. 보호자들은 환자 상태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지 어쨌는지 분주하게 짐을 싸고 있었다. 


잠시 후 소방관과 비슷한 옷을 입은 이송 요원 한 명이 이동용 침대를 끌고 병실로 들어왔다. 나에게 밝게 인사하고는, 혼자 환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도와주려는 몸짓을 하자, 이송 요원이 즉시 말렸다.

“안 도와주셔도 돼요. 선생님은 모니터만 봐주시면 됩니다.” 이송 요원은 혼자서 능숙하게 환자를 들어 이동용 침대로 옮겼다. 

근래 본 사람 중에 가장 밝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함께 1층으로 내려가 구급차에 환자를 싣고 B병원으로 출발했다. 2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이송 요원은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했고, 나는 뒷공간에서 환자 옆에 앉아 모니터를 확인했다. 다행히 교수님이 말했던 극단적인 상황의 징조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환자를 데리고 다른 병원으로 가는 ‘전원’이 처음이라는 거였다. 전원이 그렇게 박진감이 넘치는 상황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차가 병원을 나서자마자, 이송 요원은 요란한 사이렌을 틀었다. 그리고는 도로의 모든 신호를 무시하며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 병동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요원이 나에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이 정도면 응급 환자가 맞죠?”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라 생각하고 간단하게 맞다고 대답했는데, 그제야 질문의 의도를 깨닫게 되었다. 응급 환자를 태운 구급차는 교통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무법(無法) 차’가 될 권리를 나도 모르는 사이 부여해버린 셈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구급차를 볼 때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사람 또는 심장이 멈춘 사람이 타고 있고, 구급 요원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떤 구급차에는 죽은 듯이 평온하게 자고 있는 환자와, 차가 격하게 흔들리는 탓에 극심한 멀미에 빠진 의사가 타고 있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도 의식이 없고 주치의가 사망 가능성까지 언급했으니까, 응급 환자는 응급 환자였다.


5분쯤 달렸을까, 구급차의 속도가 느려지더니 갑자기 이송 요원이 창문을 내리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경적을 마구 울리며 앞차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험한 욕을 마구 퍼붓기 시작했다. 앞차가 길을 터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앞차는 10초 정도 버티다가 결국 길을 비켰고, 요원은 앞차의 옆을 지나가며 한 번 더 욕을 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창문을 닫고 다시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병원에서의 밝고 친절했던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지만, 얌전히 있었다. 조금 전 ‘선생님은 모니터만 봐주시면 됩니다’는 말이 이제는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무법 차 덕에 20분 걸릴 거리를 10분 만에 달려 B병원에 도착했다. 환자 상태는 그대로였다. 환자를 내려서 병원으로 들어갔다. 목적지는 ‘호스피스 병동’이었다. 병동에 도착하니 웬 나이 지긋한 수녀님이 맞이해줬다. B병원이 가톨릭계 병원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병동에 상주하는 수녀님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수녀님의 안내를 받아 환자를 병실에 눕힌 이송 요원은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을 테니 천천히 오시라며 먼저 내려갔다.


수녀님에게 간단히 인계를 하고 A병원에서 가져온 장비를 챙겨 내려가려는데, 수녀님이 물었다.

“지금 환자분이 주무시는 건가요?”

“아니요, 오늘 아침에 갑자기 의식이 없어진 후로 계속 저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나의 말을 들은 수녀님은 급하게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웬 신부님을 데리고 나왔다.

“환자분이 어떻게 되셨다고요?” 신부님이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의식이 소실되었다고 들었어요. 저는 전원만 맡은 인턴이라 정확한 사정은 잘 모릅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나는 얼른 ‘인턴’이란 단어 속에 들어 있는 ‘무지(無知)’라는 이미지 뒤로 숨었다.


신부님은 나에게 몇 가지 의미 없는 질문(정확히는, 나의 대답이 질문을 의미 없게 만들었다)을 더 하고는, 수녀님과 작은 목소리로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대충 엿들은 바로는 B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은 의식이 있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환자만 입원을 허용하는 모양이었다. 얼마 전 보호자가 B병원을 방문하여 입원 상담을 했을 때에는 환자의 의식이 또렷하다고 들었는데, 하필 입원하는 날 아침에 의식이 사라지는 바람에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이었다. 


여기서 호스피스 병동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말기 환자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병동이다. 이 병동에 입원하는 환자는 DNR 동의는 기본이고, 암을 치료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은 채 통증이나 불편한 신체 증상을 조절하기 위한 처치만 받는 것이 원칙이다. 그 대신, 전문 인력들이 상주하여 편안한 죽음이 될 수 있도록 환자와 가족에게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일반 병동과는 완전히 다른 목적을 가진 병동이다. 아마 B병원은 종교를 통한 정서적 지지를 확실하게 제공하기 위해 의사소통 능력이 있는 환자만 받는다는 규칙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수녀님과 신부님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니, 출발 전에 A병원의 교수님과 레지던트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곱씹어보니 이렇게 될 걸 알면서 환자를 보낸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샘솟았고, 수녀님과 신부님이 그들의 흉계에 꼼짝없이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환자를 다시 데려갈 수도 없었고, 다른 병원에서 온 한낱 인턴이 사태의 책임을 지는 것도 말이 안 됐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A병원에서 봤던 환자의 보호자들이 짐을 들고 병동에 도착했다. 나에게는 구세주였다. 수녀님, 신부님과 가족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뒤로 한 채, 얼른 짐을 챙겨 구급차로 돌아갔다. 구급차 옆에는 어느새 다시 밝고 친절해진 이송 요원이 기다리고 있었고, 응급 환자가 없었기에 교통법을 잘 지키며 안전하게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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