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월에는 응급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는 일은 내과 인턴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각종 의학적 잡일과 더불어 심폐소생술에서 흉부 압박을 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내과와 응급실은 몇 가지 차이가 있었는데, 우선 응급실은 업무량의 기복이 매우 컸다. 내과는 항상 병동이 꽉 차 있기 때문에 업무량에 변동이 거의 없었다면, 응급실은 그날그날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의 수와 상태에 따라 업무량이 결정되었다. 근무 시간의 절반 이상을 멍하니 앉아서 보내는 날이 있는가 하면, 출근부터 퇴근까지 한 번도 앉지 못하고 뛰어다니기만 하는 날도 있었다.
업무의 구성 역시 차이가 있었다. 내과에서는 매일 해야 하는 규칙적인 업무가 있고, 가끔 예상치 못한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면, 응급실에서는 대부분의 업무가 예상치 못한 업무였다. 예상치 못한 업무는 생긴 즉시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었기에, 하루 일과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했다.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일했던 내과와는 달리, 응급실에서는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언제 들어올지 모를 일을 기다려야 했다.
#2
응급실 의사들은 활기는 없었지만 활발히 움직였다. 응급실에 환자가 오면, 여력이 있는 한 즉시 환자를 보러 갔다. 응급실에 어떤 검사나 처치를 받지 않은 환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죽는 병에 걸린 사람들 같았다. 몇 주간 지켜보고 나서야, 그들의 열정적인 움직임 속에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열정 속에는 환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급실 의사는 환자의 ‘처음’만을 책임지는 존재였다. 응급실에 온 환자를 진료하고 검사하여 가장 의심스러운 질병을 찾아낸 뒤, 그 질병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의사에게 환자를 보내는 것이 응급실 의사의 일이었다. 그리고 환자가 다른 의사에게 넘어가는 순간, 응급실 의사는 머릿속에서 그 환자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환자는 여전히 응급실에 있었지만, 더 이상 응급 환자가 아니게 되었고, 응급실 의사들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없는 환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응급실 의사들은 텅 빈 응급실보다는 꽉 찬 응급실을 더 좋아했다. 꽉 찬 응급실의 환자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응급실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들의 책임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응급실 의사들은 현재 책임지고 있는 환자가 없으면서 새롭게 들어올 환자도 없는 상황 속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응급실 의사들은 최악의 근무로 ‘출근에 텅 빈 응급실, 퇴근에 꽉 찬 응급실, 그리고 다음날 출근에 다시 텅 비어 있는 응급실’을 뽑았다.
#3
응급실에 오는 모든 환자가 응급 환자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응급하지 않은 환자가 훨씬 많았다. 응급실 입구에는 찾아오는 환자들의 응급한 정도를 판단하는 ‘트리아제(triage)’라는 곳이 있어서, 응급 환자만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울 수 있게 했고 그렇지 않은 환자는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진료를 기다리게 했다. 어떤 날에는 안쪽은 텅텅 비었는데 바깥에 환자가 바글바글하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안이 꽉 차는 바람에 밖에서 응급 환자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응급실은 항상 선착순이 아니라 ‘아픈 순’이었다. 4월의 화창한 봄날, 야외에서 놀다가 넘어져 입술이 찢어진 아이는 밖에서 6시간을 넘게 기다린 끝에 10분 만에 상처를 꿰매는 시술을 받았다면, 피를 토해서 들어온 할아버지는 1시간도 안되어 응급실 진료를 마치고 내과 의사에게 넘겨져 내시경 지혈술을 받으러 갔다. 의사들에게는 당연한 순서지만, 스스로 응급 환자라고 확신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아픈 순서대로 치료받는다는 원칙을 이해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응급실 우스갯소리에 이런 말이 있었다. ‘응급실에서 당신에게 의사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이 살았다는 뜻입니다.’
응급실을 찾는 수많은 환자들 중, 가장 응급한 환자는 응급실에 절대 걸어 들어오는 법이 없었다. 항상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 문 앞에 도착했고, 구급대원이 환자가 실린 침대를 빠르게 끌면서 들어왔다. 구급대원은 보통 도착 5분 전에 전화를 해주기 때문에, 응급실 의사들은 구급대원이 알려준 정보를 토대로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응급실에 방문하는 환자들은 대부분이 심정지 환자였다.
#4
평소에 활기를 찾아볼 수 없던 응급실 의사들은 심폐소생술을 할 때만큼은 열정이 불타올랐다. 그렇게 죽음에 강렬히 저항하는 의사들은 처음 봤다. 3월 한 달간 내과의 DNR과 쇼피알에 단련되어 죽음에 무뎌질 대로 무뎌졌던 나로서는, 응급실 의사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응급실의 심폐소생술은 쉽게 끝나는 일이 없었다. 집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어 구급대원이 병원에 데리고 올 때까지 20분이 걸린 80대 할아버지 환자가 있었다. 내과였으면 즉시 보호자에게 연락하여 DNR을 받고 쇼피알로 마무리해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환자였다. 소생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응급실 의사들은 그 상황에서 어떤 고민도 없이 3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했다.
‘30분’은 응급실 의사에게는 최소 심폐소생술 시간이었다. 좀 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환자에서는 ‘40분은 채워보자’, ‘50분은 채워보자’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왔으며, 40대 정도의 젊은 환자에서는 ‘너무 아까운데’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1시간 3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하였다.
열정도 좋고 의도도 좋았지만, 인턴으로서는 응급실 의사들이 미울 때가 있었다. 그들은 심폐소생술을 지휘할 뿐, 심폐소생술에서 가장 힘든 과정인 흉부 압박을 도와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근무하는 인턴 전체가 돌아가면서 흉부 압박을 한참 하다 보면, 다른 응급 환자들을 위해 인턴이 해야 할 일이 많이 쌓여 있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면 둘만 남고 나머지는 가서 일 보라는 오더가 떨어졌고, 대여섯 명이 돌아가면서 해도 힘든 흉부 압박을 단 두 명이 번갈아 가면서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그때부터는 지옥이었다. 힘들어 죽을 거 같았지만, 응급실 의사들이 포기할 때까지는 멈출 수 없었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서 끝까지 해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응급실 의사들이 대단히 밉지는 않았다.
어느 날 동시에 두 명의 심폐소생술 환자가 들어왔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응급실 의사 한 명이 ‘루카스(LUCAS)’라는 것을 꺼내 오라고 했다. 잠시 후 처음 보는 기계가 등장했는데, 응급실 의사들은 능숙하게 환자의 가슴 위에 기계를 설치하더니, 버튼 한 번으로 매우 강한 흉부 압박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 기계를 본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저렇게 편한 기계가 있으면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1시간 넘게 흉부압박을 시킨 거야?
의문은 금방 해결됐다. 거기 있던 응급실 의사들 중 가장 높은 사람이 말했다.
“나는 확실히 사람이 하는 게 더 잘되는 거 같아.”
그날 이후로 응급실 의사들이 너무 미워졌다.
#5
응급실에서도 내과에서만큼 많은 심폐소생술을 경험했다. 성공률은 두 곳 모두 형편없었다. 의사의 열정과 심폐소생술의 성공은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었다. 열정적으로 살려보려는 응급실 의사들에게나, 수많은 죽음에 지친 내과 의사들에게나 이미 죽은 환자를 살려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밀려오는 죽음에 지쳐 무기력한 의사보다는 수많은 죽음 속에서도 하나의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가 좀 더 낫겠다 싶었다. 잠시 둔감해졌던 나의 인류애를 다시 예민하게 다듬고, 다시는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