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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리아 Dec 30. 2020

단골 : 멀어지는 것에 대하여

옆집에 카페가 생겼다자그마한 갤러리가 있던 반지하 공간인데 예술이 자리하기에는 너무나 외진 주택가였다서너 번의 전시를 끝으로 그 공간은 카페가 되었다그 카페에 처음 방문하던 날카페 공사 할 때부터 여기 지나다니시는 거 봤어요라는 주인의 말과 함께 따뜻한 개업 떡을 받아든 순간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단골이 되었다.


돌아보면 한 때 단골이었던 공간들이 꽤 있다하지만 대부분은 과거형이 되었다친밀감의 절정을 찍은 후급격히 시들해지는 요상한 징크스 때문이다새로운 단골카페가 생긴 기념으로 그간의 단골집을 돌아본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깔끔한 플레이팅이 마음에 들어 자주 찾던 백반집집사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당시 나도 길고양이를 정성스레 돌보고 있던 터라고양이로 급격히 친해지게 되었다길고양이를 동물병원으로 데려가는 데 도움을 주겠다며 휴일에 차까지 끌고 우리 집을 방문했던 사장님 부부. (결국 박스에 담기를 실패해서 동물병원은 못갔다.) 고마운 마음에 꾸준히 식당을 찾다가어느날부터 시들해졌다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식당의 반복되는 메뉴와 잦은 야근이 이유가 아니었을까 한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바도 한 때는 단골이었다평소 술을 마시지도좋아하지도 않는데도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부어라 마셔라 하던 때그 곳의 음악이 좋았고 분위기가 좋았다사장님과 함께 담배를 태우며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것이 좋았다항상 바를 함께 찾던 친구가 외국인 노동자를 자처하고 지구 반대편으로 훌쩍 떠난 이후자연스레 발길이 뜸해졌다이제는 지인들과 어쩌다 한 번씩 찾는 바가 되었고사장님과도 인스타그램으로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는 정도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단골집을 잃은 기억도 있다보통 나는 단 커피를 마시지 않는데카페 모카가 참 맛있던 집이었다그러던 어느날카페 사장님을 클럽에서 마주치게 된다일 년에 한번 갈까 말까하는 클럽에서그것도 하필 단골 카페 사장님을 마주치다니.희박한 확률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서로를 알아보고 어찌나 당혹스럽던지하지만 당혹감도 잠시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마테차를 나눠 마시며빽빽한 사람들 틈에서 정말 신나게 춤을 췄다내일이 없을 사람처럼 춤을 추고그 카페에 다시 가는 일은 없었다.


밥 한 끼 먹으려고술 한잔커피 한잔 마시려고 찾아간 공간에 마음이 가는 일그건 아마 내 취향을 이해받고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 한 스푼그리고 나의 정서와 결을 함께 하는 곳에 대한 반가움 한 스푼일거다나와 같은 취향을 갖고 있구나이 사람도 이런 느낌과 분위기를 좋아하는구나.’


하지만 우연히 가까워진 관계가 우연히 멀어질 때그 어색함을 견디기란 생각보다 힘들다가게 앞을 지나갈 때 핸드폰을 보는척 하고,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사장님과 쌓은 얇고 짧은 정을 배신하는 것만 같은 죄책감과 부채감이 들기도 한다. ‘단골의 자격은 일정한 소비를 지속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일까싶지만 아무 대가성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도 비슷한 것 같다.


고교 시절보물처럼 숨겨진 노래를 찾아 함께 들으며 내 세계를 온전히 공유했던 친구.

대학 시절해가 뜰 때까지 술잔을 함께 기울였던 친구.

그리고 지금퇴근 후 지친 몸뚱이를 침대에 뉘이고 남은 손가락의 힘으로 신세한탄 카톡을 주고받는 친구는 모두 다르다.


어쩌면 자연스레 소원해진 관계에 너무 마음 쓸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멀어진 관계들을 애써 붙이지 않아도 된다그 시절그때나를내 정서를 이해하고 함께 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바람이 길게도 불고짧게도 불고때로는 잠시 멈추는 것처럼그저 가끔씩 희미해진 관계의 끈을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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