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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피는 Apr 08. 2020

병원은 마트와 다르다

46세 난임일기 3 : 인공수정 1차

처음 난임 전문 병원의 문을 두드릴 땐 그런 상상을 했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 아, 네 저희 아기가 안 생겨서 인공 수정해볼까 싶어서요.                    


그런 식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바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인공수정 시술에 들어갈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지금에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깨닫고 웃음이 났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검색 하나 안 해보고 갈 수 있었을까.  

마치 가게에서 물건 주문하듯이, 내가 해달라고 원하면 바로 해당 서비스가 제공되는 줄 알았으니 말이다.


난임 검사 하나를 끝내기 위해서  몇 번에 걸쳐 병원을 방문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정말 몰랐었다. 그래, 내가 찾은 곳은 샵이 아니라 병원이었던 것이다.


여러 차례의 검사와 진료, 상담 끝에 마침내 보조생식술-즉, 인공수정을 시도해보자는 권유가 있었다. 이제야 겨우 진짜 출발점에 선 것이다.




                              인공수정 : 호르몬제로 조절된 여성의 배란 시기에

                              정액에서 뽑아낸 건강한 정자를 질 내로 주입하는 시술


비교적 인공수정은 간단한 시술이다. '인공적으로 수정을 시킨다'는 뉘앙스 때문에 종종 시험관에서 수정란을 만드는 "체외수정" (시험관 시술)과 혼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인공수정에서 인공적인 과정은 딱 세 단계에서만 개입될 뿐이다.


1. 과배란을 유도하는 것

2. 정액을 정제해서 양질의 정자를 선별하는 것

3. 선별된 정자를 자궁에 직접 주입하는 것


배란 주기에 맞춰 과배란을 유도해야 하기에 한 달에 1회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인공수정 시술 자체는 5분에서 10분 정도, 시술이 끝난 후에도 특별히 관리할 필요가 없다. 나의 경우는 그래도 30분 정도 수액을 맞고 귀가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난포의 성장 상태와 배란 상태의 확인 때문에, 수시로 주치의에게 찾아가 질초음파를 반복해야 하기에 여러 번의 병원 방문이 수반되긴 한다. 늘 그러하듯, 이 과정에서 개인의 스케줄은 의미가 없다. 무조건 배란 사이클에 맞춰 병원에서 요청하는 날 방문을 해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었던 기억이다.  





내가 경험한 인공수정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공수정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된다.


1. 과배란을 유도하는 것

2. 정액을 정제해서 양질의 정자를 선별하는 것

3. 선별된 정자를 자궁에 직접 주입하는 것


1-1. 왜 과배란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난자가 한 달에 하나만 생산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한 달에 여러 개의 난포가 성장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보통의 경우, 가장 건강하고 빠르게 성장한 하나의 난포만이 난자가 되어 배란될 뿐. 나머지 난포들은 자연소멸의 운명을 겪게 된다. 난포들 역시 치열한 경쟁을 거쳐 건강하고 우수한 아이를 선별하는,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런데 과배란을 유도하는 약과 주사는 이 과정에서 자연의 법칙에 개입한다. 성장한 여러 개의 난포가 소멸되지 않고 모두 난자로 배란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임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의학적 개입이라고 할까.


과배란 주사와 약을 통해, 여러 개의 난포를 잘 성장시킨 후, 병원을 방문하면, 난포의 상태를 확인해주신다. 이때 난포의 개수와 성장상태, 모양, 자궁내막 등의 두께도 함께 체크한다.


나의 경우는, 자궁근종이 2-3개 정도 있었는데, 2cm 이하라서 인공적인 조치를 취할 정도는 아니므로 근종에 대한 치료는 놔두고, 계획대로 인공수정 시술을 진행하자고 하셨다.  



자궁근종의 경우 착상이나 임신 유지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명확한 난임의 원인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만큼 가임기 여성에게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근종의 위치, 개수, 크기, 임상 증상 등을 고려해서 치료를 결정하며, 5cm 이하인 경우엔 별다른 치료 없이 지켜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나의 난포는 왼쪽에 몇 개, 오른쪽에 몇 개가 잘 자라고 있는데, 아직 덜 자란 아이들이 좀 있으니 2-3일 뒤 다시 내원해서 상태를 보고 시술 날짜를 잡자고 하셨던 것 같다. 세 번째 병원 방문 이후, 시술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배란촉진제 주사를 받아왔다. 이 주사로 성장할 대로 성장해 있는 모든 난포들을 다 난자로 바꿔야 하기에, 시간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아침 시간대로 시술을 잡아놓았기에, 전날 저녁 9시에 배란촉진 주사를 맞았다.


2. 정액 채취


수음 법(Masturbation)을 통해 채취한 정액은 체내에서 수정 능력을 높이기 위해 특수 배양액으로 처리하여 운동성이 좋은 정자만을 분리하는 처리과정을 거친다. 시술 3일 전부터 음주, 사우나, 부부관계 등은 피하고 병원 내 정액 채취실에서 정액을 채취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3. 인공수정 시술


건강한 정자들을 가느다란 관을 통해서 아내의 자궁 속으로 직접 주입한다. 시술 시간은 평균 1분 이내로 걸리며, 시술 후 10~15분 정도 안정 후 귀가하면 된다고 안내책자에 쓰여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2번과 3번은 같은 날에 이루어진다.


생리주기에 맞춰 병원을 방문해서 난임 검사하던 달처럼, 이번에도 나는 토요일에 병원을 방문하였다. 칼같이 28일 생리주기라서 이런 점은 편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남편도 나도 시술 날 근무를 조정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시술 당일, 정자의 후처리 시간이 필요하기에 남편은 병원 도착하자마자 2층으로 끌려올라가 정액을 체취 당했다(?).


나도 잠시 후, 초음파로 난포 상태를 확인 후, 시술실로 올라갔다.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맥 스캐너를 통해 본인 등록 및 확인을 한 뒤에야 시술실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손목에 남편과 내 이름이 적힌 띠지를 둘러매어 준다.


내가 시술을 받은 병원의 경우 체외 수정 시술실과 인공 수정 시술실은 따로 구분되어 있는데, 내가 시술을 받던 날, 시술 동기들은 4-5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도 몇 번에 걸쳐 남편의 이름과 내 이름을 재확인했다.  


탈의실에서 하의만 속옷까지 다 벗고 가운을 입은 채 시술실 베드에 누워서 대기하고 있으면, 잠시 후 선생님이 오신다. 다리를 벌려 무릎을 세운 자세로 있으면, 뭔가 차가운 기구를 삽입해서 입구를 확보한 후 정자를 넣어준다. 기구를 삽입하고 벌릴 때 아주 약한 통증과 아주 커다란 불편함이 파고들어온다. 누워서 30분가량 수액을 맞고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편과 만났다.


그렇게 나의 1차 인공수정은 완료되었다.




인공수정 시술 후


인공 수정의 경우, 시술 후 별다른 관리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아침저녁 2회에 걸쳐 질정을 삽입하라는 설명을 들었다. 여성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체내에 공급해 주기 위한 것인데, 내가 사용한 제품은 "유트로게스탄"이었다.


프로게스테론은 황체에서 분비되는 황체 호르몬의 주된 물질로, 임신 과정 전반에 자궁벽 강화 및 임신유지에 관여하는 물질이다. 보험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가격도 꽤나 비쌌다. 한 알에 4,000원 정도?

 

하지만 질정이 나를 괴롭힌 것은 가격 말고 다른 까닭에서였다.

 

이름이 질정인 만큼, 질에 직접 넣어야 하는데, 손가락 두 마디 이상을 집어넣어야만 약이 제대로 들어간다고 한다. 내 몸이지만, 질 속에 손가락을 삽입한다는 것에 나는 무척이나 심한 거부감이 들었다. 끔찍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삽입을 도와주는 기구인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 분도 계셨고, 항균비닐장갑을 끼고 넣으시는 분들도 있었다. 병원에서도, 약국에서도 아무도 내게 이러한 안내를 해주지 않아, 비누로 뽀독뽀독 씻어 맨손으로 넣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애플리케이션이나 항균 장갑을 사용하는 방법이 오히려 삽입 과정에서 질내 상처를 내는 경우가 많아, 저 정보를 알았던 분들도 대부분은 그냥 맨손으로 삽입하셨다고 하니, 이건 무지가 오히려 도움이 된 것려나.


질정 삽입에 대해 내가 워낙 끔찍해해서, 결국, 남편이 대신 넣어줬다. 내가 스스로 삽입하는 것과 남편의 손을 빌리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덜 끔찍한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 질정이라는 것이 넣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줄줄 흘러내린다는 점이었다. 나중에 보니, 다른 병원에서는 질정을 넣은 후 30분 정도는 누워서 잘 흡수되도록 하라고 지시를 해줬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지시를 받지 못해 바로 일상 활동을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이 흘러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덕분에 팬티라이너는 필수였다. 볼일을 보고 나면 변기에 둥둥 떠다니는 기름 때문에 변기 청소도 자주 해줘야 했다. 질정 외곽의 코팅 성분이 유성이라 그렇다고 한다. 질정이 흘러나오는 것도 불편하긴 한데, 몸에 흡수되지 않고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나를 힘들게 한  것 중 하나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것을 감안하고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한다.


여성 호르몬 프로게스테론을 체내에 인공적으로 주입하는 방법은, 구강으로 삼키는 약과 주사제, 그리고 질정이 있는데, 먹는 약과 주사의 경우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질정을 사용한다고 한다. 5년 전에도, 그리고 5년이 지난 후에도.  몇 년 전 의학 세미나에서 부작용 없는 간편한 주사제가 상용화된다고 해서 많은 의사 선생님들이 환호하며 기다렸는데, 세월이 흘러도 출시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검색하며 읽은 기억이 난다.


다음 병원 방문은 임신 여부의 확인을 위한 피검사 하는 날이다.


그때까지 착상에 도움이 된다는 여러 가지 음식들을 가격 생각하지 않고 막 사서 먹었다. 전복, 아보카도, 부추, 양배추, 굴, 호박, 소고기 등. 돌이켜보니 난임 시술을 받는 과정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가 바로 이때였던 것 같다. 맛있는 거 원껏 먹었던 시기.




1차 시도에서 성공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확률과 같다고 하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공수정은 확률상으로 자연임신과 별 차이가 없다. 인공수정의 성공률은 보통 12~15% 정도다. 그런데도 왠지 나는 내가 그 로또의 주인공이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피검 결과는 임신 근처에도 못 간 0.023이라는 수치.


다음 생리를 시작하면, 생리 3일째에 내원해달라는 안내와 함께

그렇게 인공수정 한 번의 사이클이 끝났다.


이제 2차 시도를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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