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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Jul 18. 2024

완벽하게 이해한 카이로스의 시간

어제 스포츠 센터로 가기 위해

숙소에서 나와 걷기 시작한지 5분만에

아이가 외쳤어요.

"Emergency!"

"그니까, 숙소에서 나오기전에 처리하고 나오라니까"

"아니, 나오기 전에는 안마려웠지"

"똥마렵구나, 어쩌냐.. 우리 20분은 더 걸어가야하는데, 지금 숙소에 들렸다가 가면 늦는데, 좀 참아봐"


열심히 걸어가는 아이가

오늘은 왜 이렇게 머냐며 하소연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이토록 멋진 휴식>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바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여러 책에서 언급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의 개념이 정확하게 나와서 이번엔 잘 기억해야겠다 생각하고 열심히 읽은 부분이거든요.

"그리스 신 중에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거든?"

그리스로마신화를 좋아하는 아이가 귀를 쫑긋합니다. 

"크로노스 신은 시간의 아버지라고 불려, 우리가 매일 보는 시계있잖아. 달력, 분, 초, 시간, 알람시계 등등 정확한 시간을 나타내는 게 바로 크로노스의 신이야. 

반면에 카이로스의 신은 음.. 뭐냐면, 예를 들어 학교에서 지루한 수업시간은 시간이 잘 안가고, 애들하고 놀거나 게임을 하면 시간이 엄청 빨리간다고 느끼잖아? 그게 카이로스의 시간이야. 

지금 네가 똥이 마려워서 거리도 엄청 멀게 느껴지고, 시간도 잘 안간다고 생각하잖아? 그게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이지. 우리가 스포츠센터까지 가는 거리는 어제랑 오늘이랑 같아. 그러니까 시간도 같은거지. 다만 네가 느끼는 시간이 다른거야"


아이가 상당히 이해하는 듯한 표정입니다. 

아이의 표정을 보니, 

앞으로 제가 그리스로마신화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지난 캠핑카 여행을 할 때,

스위스 고르너그라트에서 마테호른을 바라보며 

3만 5천보를 걸었던 날을 기억하냐고 물어봤어요. 

그날 정말 멋진 자연풍경을 즐기며 

열심히 내려오다가, 

마지막 기차역을 지나쳐 마을이 

얼마 안남은 줄 알고 울창한 

전나무숲을 2시간 넘게 걸어내려갔었거든요.

그날도 아이는 중간에 똥이 마렵다고 울상을 지었었죠.

"너 그날도 내려가다가 똥마렵다고 했잖아"

"내가 그랬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기억안나?"

잠시 이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삼켜버립니다. 그 긴 시간동안 저는 아이의 주의를 '똥마렵다'에서 돌리기 위해 '끝말잇기'를 하자고 제안했거든요. 

끝말잇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정말 똥마려움을 잊고 '무한의 끝말잇기'를 했던 날

힘들었던 정신상태가 생각나서 일단 

그 말은 꿀꺽 삼켜버리고 다른 말을 꺼냈습니다.

"그날 엄마가 내려가면 바로 아이스크림과 콜라를 한꺼번에 사준다고 했었지"

"사줬어?"

(아.. 이 이야기는 수십번 한 것 같은데 왜 또 물어볼까요)

"당연히 한꺼번에 콜라와 아이스크림 다 사줬지!"

"아이스크림만 사준 것 같은데...."

이 말이 무한 반복이 될 걸 알기에

둘 다 사줬다고 하고 마무리합니다. 

저도 어제의 카이로스의 시간은 참 길게 느껴지더라구요. 아이와 함께 긴장한 시간이었습니다.

스포츠 센터에 거의 다다른 아이는 자기가 똥을 누는 동안 다들 안으로 들어가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시작했습니다.

"걱정 보다는, 아예 최악의 상황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봐. 똥 누고 있을 때 수업을 시작하면 최악의 상황이 뭘까? 그 상황에서 무얼 할 지를 생각해보는게 어때?

예를 들면, 수업이 시작되어서 아무도 로비에 없어. 그러면 가방 넣어두는 곳으로 가서 가방을 넣고, 수업을 하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아? 봐, 할 수 있지?"

제 말은 꿀꺽 삼켜버리고, 대뜸 이야기합니다.

"엄마, 나 화장실 들어가는데 '태윤아 똥 잘 싸고와~' 이런 말 하지마!" 

걱정이 많은 아이입니다. 


오늘 오전 스포츠 센터로 걸어가는 길,

"오늘은 카이로스의 시간이 짧네?"

"올~~"

완벽하게 이해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시간의 아버지로 묘사 되는 크로노스는 '측정된 시간'을 상징한다.  카이로스란 그리스 신은 크로노스만큼 주목받지 못하지만 별개의 강력한 시간 개념을 상징한다.  크로노스가 시간의 아버지라면, 카이로스는 당신이 좀 더 자주 어울려야 하는 쿨한 삼촌이라고 하겠다.

"카이로스 신은 제우스의 막내아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기회의 혼령으로 보았다. 이솝이 묘사한 카이로스는 빨리 달리는 자로서 이마 위 머리 한줌을 빼고는 대머리여서 오로지 앞에서만 움켜잡을 수 있었다. 그것도 내게 다가올 때만 움켜잡을 수 있다. 지나간 후엔 제우스조차 그를 잡아당길 수 없다"

크로노스 시간에 집착하지 않고 타임오프 할 때, 우리는 속도를 늦추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사하게 된다. 시간을 경험하는 다른 방식에 접근할 기회를 얻는다. 시간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순간순간 밀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토록 멋진 휴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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