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한 후에도 내가 마라톤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주 감귤 마라톤 대회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제주 감귤 마라톤 함께 가요"는 나에게는 농담에 가까웠다.
1분부터 뛰는 달리기 8주코스가 끝날 무렵 집에 식사를 하러오신 손님들이 제주 국제 관광마라톤 대회가 있다고 알려주셨다. 5km 는 유모차를 끌고 뛰는 수준이니 10km 는 거뜬히 갈 수 있을꺼라고 뽐뿌를 하셨다. (정작 그분들은 그냥 농담으로 말씀하신 거였다..)
남편과 나는 낚였다.
"남편, 복직하기 전에 가족 추억을 만들겸 가족 마라톤 함께 하는게 어때?"
"그럴까?"
바로 10km를 등록했다. 부모가 10km 이니 아이도 당연히 10km를 등록했다.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냥 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우리는 완성을 생각했다.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달리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찾아왔다. 이웃운동회 이어달리기에서 이기겠다고 무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병원가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달리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하지 말라고 할까봐..)안되겠다 싶을때 병원에 갔었는데 달리는 자세 때문이라고 했다. 괜찮다 말다해서 지금까지도 가지 않고 있지만 만성통증이 될까봐 살짝 겁이났다.
5월에 열렸던 제주 국제 관광마라톤은 축제같았다. 마라톤에 처음 참여해봤는데 출발하기 전에 함께 스트레칭도 하고 도착하고나서 무제한 전복죽과 맛난 겉절이 김치도 먹었다. 포카리스웨트를 무제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아이는 신이 났다. 무엇보다 10km를 완주했다는 성공이 아이의 몸에 새겨졌다. 걷뛰했겠지만 골인지점까지 왔다는 건 어쨌든 성공이니까.
10km 마라톤을 하고 나니 다음은 하프를 도전하고 싶어졌다. 10km 를 도전해야한다고 할때와는 또 달랐다. 24년 1월부터 참여하고 있는 부단히런의 리더 아주나이스님은 다음 목표가 있어야 달리기의 업그레이드가 된다고 했다. 올해부터 달리고 있는 팔레트님과 대전에 있는 친여동생을 꼬셔 제주 감귤 마라톤 하프대회를 등록했다. 남편은 10km를 등록했고, 아이는 5km 를 등록했다. 여동생과 조카가 천천히 5km 를 쉬지않고 달리는 걸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km 를 달리는 아이는 여동생, 조카와 함께 달리고, 남편과 나는 우리의 페이스에 맞게 달리기로 했다.
마라토너 7년차 제부는 올해만해도 풀마라톤을 약 7번달렸는데 제주감귤마라톤 대회에 별로 관심이 없어하다가 달리기 커뮤니티인 부단히런에서 내가 제부자랑을 했다고 하자 "그럼 달려볼까?"로 결정이 되었다고 했다.
가상훈련 하프마라톤을 셋팅한 후 프로그램의 지시에 따랐다. 일주일에 최소 3번이상은 달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살짝 1시간이 넘었는데 시간이 갈 수록 2시간에 가까워졌고, 가상 하프마라톤을 세 번이나 해야했다. 그와 함께 여행의 기록 최종원고 마무리와 출간일정도 겹쳤다. 과연 함께 할 수 있을까 두려웠으나, 그 일이 닥친게 아니기 때문에 변명을 만들지 않고 런데이가 알려주는데로 훈련을 하나하나 완성해나갔다.
첫번째 하프가상마라톤을 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가상마라톤을 위해서 컨디션을 관리했기에 날씨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늦여름이라서 춥지 않을 것이다.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기위해 탑동해변을 왔다갔다하기로 했다. 운동시간은 약 3시간으로 잡았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으나 오락가락하며 비가 내렸다. 모자챙 위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고, 휴대폰이 비에 젖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중단하지 않고 달렸다. 새벽이었는데 비가왔기에 운동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21.1km이니까 5km 를 네 세트 한다는 각오로 달렸다. 6km 는 1km 를 성공한게 되었다. 그렇게 왔다갔다 달리고 있는데 3km 쯤 남았을까 왕복으로 달리며 계속 마주쳤던 어떤 아저씨가 썸즈업을 해준다. 심각한 표정으로 달리고 있다가 갑자기 행복감이 올라와 활짝 웃었다.
1km 남았다고 런저씨가 이야기해주었다. 빗줄기가 더 거세졌고 주변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마음안에서 무엇인가 울컥하는 물체가 내 목위로 뛰쳐나왔다. 오열과 함께 눈물이 빗물과 섞여 흘러내렸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에게서 나온 것같지 않은 엉엉 하는 울음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남은 거리를 전력질주하며 기쁨이 온몸에서 흘러나오는걸 고스란히 느꼈다.
"예진아, 해냈어!"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제 두려운게 없어졌다.
무엇이든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을거라는 마음이 몸에 새겨졌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하프를 하고 풀코스를 뛰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은 풀코스를 하겠다는 마음은 먹지 않았다. 하프로 충분하다)
결국에 달리기는 나의 믿음을 신뢰하는 과정,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성취하는 결과였다.
달리기를 하며 여름내내 핑계를 댄 적이 없었다. 비가와도 나갔고, 더워도 나갔다. 술을 마시고 숙취에 시달려도 나갔고 달거리를 하느라 찜찜해도 나갔다. 어떤 핑계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했다.
하프마라톤을 뛰겠다고 결심한 순간에 결과는 이미 나왔다. 작은 반복만 하면되었다. 그게 성공의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