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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 쿡에서 러닝이 가능할까?

뉴질랜드 달리기 기록, 러너된지 D+344

by 꿈꾸는 유목민 Jan 28. 2025

25년 1월 27일 월요일

뉴질랜드 D+10


남편이 있는 동안 뉴질랜드 관광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가장 만만한 마운트쿡에 가기로 했다. 마운트 쿡은 서던 알프스 산맥에 속하며,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타즈만 빙하와 후커 빙하 중 타즈만 빙하가 가장 크다고 한다. 도착한 토요일에는 타즈만 빙하를 보러 전망대까지 다녀왔고, 일요일 오전에는 숙소에서 일찍 서둘러 후커 빙하길인 후커 밸리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금요일부터 걷기만하고 달리지는 못해서 몸이 찌뿌등했다. 몸이 찌뿌등한 것보다는 달리기를 하지 못한 마음이 더 무거웠을 수도 있다.


전날의 비오는 날씨와는 달리 밤새 내린 비가 물러나가 햇살이 멋지게 비치는 아침이었다. 후커밸리트레킹은 당연히 좋을 것이다. 어제 잠깐 망설였던 연보라색 달리기 바지와 바람막이 잠바를 챙기지 않은 걸 잠깐 후회했다. 장비발도 중요한데 말이지...


기분좋게 남편, 아이와 함께 후커밸리트래킹 길을 걸었다. 그런데 종종 러너들이 있었다. 혼자 달리는 사람도 있었고 떼를 지어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밤새 비가 내려서인지 물 웅덩이가 많아 불편했는데도 말이다. 남편이 뛰어오는 여성의 무리들을 보며 나보고 뛰어보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아이도 아빠와 비밀이야기가 있는지 계속 뛰라고 재촉했다.


1.5km 정도를 걷고 그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안에는 내열잠바를, 그 위에는 엉덩이밑에까지 내려오는 바람막이 잠바를 입었고 머플러까지 해서 몸이 무겁지만 달려보기로 했다. 걷기로 맞춰져있었던 가민와치를 중지하고 달리기로 다시 셋팅했다. 오늘 달리기 제안을 보여주었다. 아직 조작법에 익숙하지 않아 그만 가민와치가 제안한 달리기 셋팅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평균 달리기 시간은 1km 에 8분이다. 평지가 많은 트레킹 길이었지만 8분인데도 숨이 차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마운트 쿡의 후커 빙하 트레킹 길을 달리다니 생각만해도 멋진 일이다. 날이 차지않고 덥지도 않았다. 달리기를 하니까 앞서 가던 사람들이 길을 내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달리는 건지 뛰는 건지 알수가 없지만 그래도 달릴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잘 포장된 길만 다니다가 바닥에 돌이 잔뜩 깔린 길을 달리니 숨이 금방찼다. 1km 지점을 달린 순간부터는 언제 이 달리기를 멈출까를 고민했다. 더 달릴까? 멈출까? 숨이 찼지만 숨이 막히는 정도는 아니니 더 달릴까? 계속 마음의 소리가 왔다갔다...했다. 2.5km 를 달린 후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정도면 처음 산길을 달린 것 치고는 괜찮았다. 나머지는 걸어서 후커 빙하에 도착하니 땀이 났다.


생각해보면 더 달릴 수 있었다. 나는 왜 멈췄을까? 달리는 간간히 무릎 통증이 찌릿했다. 평지를 달릴때보다 더 많은 자극이 있을거라 미리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인생도 그런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시도할 수 있고, 더 할 수 있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려움때문에 시작하지 않거나, 멈춘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 멋진 트레킹 길을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고, 아니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오더라도 그때는 상황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실행할 수 있을 때 그냥 해보는 거다. 이번에도 나의 본능을 따랐다. 남편이 있었기에 아이를 두고 멋진 길을 달릴 수 있었다. 걷는 것도 좋았지만 달리는 건 더 좋았다. 달렸기에 온전히 다른 종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시도하고 실행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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