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폐암환자의 시끄러운 독백
어느날 나에게 찾아온 청천벽력같은 소식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왜 폐에 암이 생겼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다. 6년차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약했던 기관지가 식품업계에서 일하면서 피곤한 몸상태와 맞물려 생긴것이 아닐까...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내가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P사에 지원을 했는데 서류가 통과되었다는 문자가 온 것이다. 사실상 완전한 합격은 아니었지만 합격한거나 마찬가지였다. 10주간의 교육이 끝나면 각 지역의 매장에 발령받아 근무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자신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휴학을 하고나서도 틈나는 대로 집에서 16만원짜리 가정용 오븐으로 베이킹을 할때마다 작은 성취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흥미로 시작했던 일이 취미가 되었고 일이 되었다.
잼이 들어간 마카롱, 버터와 각종 토핑이 가득있는 뚱카롱,
밀가루보다 탈지분유가 더 많이 들어가 포슬포슬한 식감이 매력인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이라 불리는 스쿱쿠키,
사먹는게 더 쉬운 버터링,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썰 때, 나는 쿠키 반죽을 썰었고,
그렇게 같은 간격으로 잘려진 쿠키 반죽으로 구운 사브레,
핸드믹서기 없이 튼튼한 팔로 거품을 내어 만든 생크림 케이크 등등.
내 손으로 직접 만든 디저트를 예쁘게 포장하고, 주변에 나눠주며 작은 성취와 행복을 느꼈다. 그때 느껴진 간질거림은 ‘설렘’이었다. 그 느낌을 다시 또 느끼고 싶어 꿈이 목표가 되었다. 맛있는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로. 그렇게 졸업도 전에 합격 통보를 받고 교육을 수료한 후 고향으로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역시 세상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여느 날과 다를바 없는 날 새벽 6시.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떴다. 더 자고 싶었지만 더 잤다간 지각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왜이렇게 출근은 싫어지는지….
이래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 말라고 했었나보다.
제빵사의 업무는 빵이 발효되어 구워져 나오는 생산 일정에 따라 일을 했다.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해지지 않은 날씨에 정신은 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쉬었다간 과발효가 되어 맛없는 빵이 만들어진다.
바쁜 오전 제빵 업무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쉬는 시간동안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 지 확인했다. 어짜피 회사 단체톡방 아니면, 남자친구나 친구의 연락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핸드 폰 알림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있었다.
내용을 확인해보니 보건소에서 온 연락이다.
식품업계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
그 결과가 문자로 온 것이다. 흉부 X-ray에 특이점이 보이니 빠른 시일내에 방문하라는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별일 아닐거야.’라며 마음을 다잡고 퇴근 준비를 했다.
보건소에서 연락온 것을 상사에게 보고하여 급하게 휴무 일정을 변경했다.
보건소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위해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다.
진료실에서 내 이름이 들려왔다.
“OOO님 진료실로 들어오실게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표정이 좋지 않으신 의사선생님이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직감했던 것 같다.
진지한 표정의 의사선생님을 보면 아마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층 더 불안해졌다.
종합병원에서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한 병에 걸린건 아닐까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했다.
불안은 더 큰 불안한 상상을 만들었다.
갑자기 닥처온 질병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그저 혹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분명 건강했다.
밤을 새고도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는데 아프다고 한다.
꿈이길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