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꽤나 매섭게 불기 시작한 어느 겨울날, 미나는 시린 손을 꼼지락 꼼지락 비벼가며 집 근처 놀이터에 멈춰선 시소가 유난히 눈에 띄어 우두커니 섰다.
긴 널빤지 양쪽 끝에 사람이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놀이기구인 시소. 양쪽 끝에 탄 두 명이 모두 공중에 떠 있으려면 어느 한 쪽으로도 무게가 치우치지 않고 비슷해야만 한다.
미나는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시소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친구들 무리 중 소외 받는 친구가 생기면, 그 친구를 더 챙기고 그 친구와 무리를 잇기 위해 노력했다. 여학생들의 시기 질투 속에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가 생기면, 그 친구를 대신해 싸우다가 불똥을 맞을지 언정 자신은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 나름 의리 있는 인간이라 생각했다.
영화를 보거나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도 선한 주인공이건 악당이건, 한 쪽이 우세하고 있으면 꼭 열세하는 쪽으로 응원을 바꾸곤 했다.
지지고 볶고 참 많이도 싸우던 질풍노도의 학창시절이 지나고 친구들은 그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도 말한다.
“미나야, 내가 그 때 너 때문에 얘랑 놀았잖아. 근데 지나고 보면 너가 참 우리를 잘 이어준 것 같다니깐! 깔깔깔~”
HR팀장이 된 미나는 아직도 ‘시소의 한가운데’에 있어야 하는 일이 많다.
중간에서 긴 널빤지를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도록 조율해야 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팀장님, 나 진짜 병원이라도 상담 받으러 가봐야 할까 봐요. 우리 팀장님은 자꾸 시장 상황도 잘 모르면서 결과가 안 나온다고 나를 개무시 한다니까요?”
라고 말하는 저성과자 팀원 A와,
“연봉과 경력에 맞게 충분히 낼 수 있는 성과를, 지금 상황이 어려우니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이러면서 무책임하게 가져오는게 맞아요? 저는 그 팀원과 길게 일할 생각 없어요. 그분한테 쏟을 에너지와 시간도 더 이상은 없다구요.”
라고 말하는 A의 팀장 B 사이에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서로의 입장을 부드러운 언어로 이해시켜 주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도 있었고,
“미나 팀장님, 한국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국의 HR로서, 탤런트 시장의 상황이 어떠하고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를 정확히 의사소통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본사에서 시키는 일에 ‘네,네’ 만 하는 인사팀장은 사실 저는 원치 않아요. 때로는 한국을 대표에 싸워 주길 바란다구요.” 라는 한국 지사장 C와
“미나, 네 생각엔 한국 리더십의 리더십 스타일은 어때? 리더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라고 묻는 본사 HR팀의 수장 D 사이에서 어느 한 쪽도 깎아내리지 않고 양쪽 모두에게 신뢰를 얻으며 양 쪽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위해 노력해야 하기도 했다.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는 다는 것은 곧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혹은 양쪽에 모두 속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HR전문가로 일해온 지난날을 떠올린 미나는 HR일을 잘 한다는 건, 특히 HR팀장 역할을 잘 한다는 건 ‘저는 어느 쪽의 편도, 뿌락치(스파이)도 아니예요.’ 또는 ‘저는 모두의, 당신의 편이예요’라는 무언의 메시지와 함께 그야말로 '발란스를 잘 잡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시소앞을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