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란 May 11. 2023

겨울의 아침들을 떠나보내며

겨울의 특별함에 대해


아침 일찍부터 새들이 리허설도 하지 않고 바로 열창을 시작한다. 바쁜 날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존재를 알리듯, 자기 목소리가 들여지기를 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기 시작하는 아침이다.


봄날을 알리는 새들의 노래는 꽤 오랫동안 지속됐지만 아직도 북유럽의 공기 속엔 얼음 내음이 섞여 있다. 이번 겨울이 길었던 것은 떠나지 않고 오래 머문 겨울 탓일까 아니면 늑장을 부리며 올 생각을 안 하는 봄탓일까. 따뜻한 햇살에 목마른 나는 겨울도 탓해보고 봄도 탓하며 마음을 위로해 보지만 탁하면 뭐 하랴 아, 오늘의 하루를 맞으러 으스스 떨고 있는 봄꽃에게 아침인사를 건네본다.



그렇게 많은 겨울 속에서 봄을 기다리며 살았다. 주어진 환경에 충실하지 못했던 겨울의 시간들. 그렇게 겨울을 잘 살아내지 않고 대충 살아버렸다. 꾸역꾸역. 봄이 오는듯한 느낌이 들자 지겨워진 겨울은 가버리라며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않고 보내버리려 하는 것은 아닐까. 주어진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지 못했던 시간들.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들과 불확실한 미래에게 빼앗겼던 나의 순간들… 나에게 주여진 ‘지금’에 안주하지 못했던 나의 마음들이 야속하다.


봄을 맞이하기 전에 겨울을 서운하지 않게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난히도 길었지만, 어두웠지만, 추웠지만, 아팠지만, 겨울이 주었던 선물들을 복기해 본다. 그리고 봄과 여름, 두 계절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날 그 겨울을 기대해 본다. 같은 겨울이 올지 다른 겨울이 올진 알 수 없지만 두 계절을 지나고 나면 나도 변해 있지 않을까. 그러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유는 의미를 만든다.

겨울을 지나며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더욱 믿게 되었다. 아니 그 이유가 없이는 이제는 살기가 힘들어졌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나에게 자꾸 되새기니 이제는 진짜 그러리라는 믿음으로 자리 잡았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좋을 것 하나 없을 것 같은 추운 겨울에는 엄청난 의미들이 숨어있다. 그 시간만이 주는 이유와 의미들을 마음속에 모을 수 있었다.


계절에도 이유가 있다. 신이 계절을 만들며 이유가 없이 만들지는 않았을 터. 다른 겨울들은 그때의 아름 다움을 발견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겨울은 그 이유를 차가움 속에서 발견해 내야 한다. 겨울의 특별함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그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눈을 키우는 것. 시련으로 다가온 삶에서 그 속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려는 의지. 겨울의 아름다움은 당장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야 서서히 찾아드는 빛 같은 것이다.



내가 나를 만나기 참 좋은 계절

이번 겨울은 나에게 혼자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람들 속에서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웠던 내가 혼자와 그룹 그 중간에 끼어 어디에도 끼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혼자’에 속하도록 나를 받아들여줬다. 혼자의 시간 속에서 내 안의 나를 만나고 나를 대면하며 다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이내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겨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니면 진작에 배웠어야 할 이 방법을 이번 겨울은 나에게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이제 떠나려는 겨울에게 봄이 와서 잊어버리기 전에 고맙다는 말을 전해본다. 그렇게 겨울의 아침들은 봄을 맞이할 수 있는 또 하루의 희망을 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