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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란 May 23. 2023

연둣빛 봄의 숲 속을 걸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해

이틀 전까지만 해도 겨울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지만 봄의 내음으로 숲 속이 새 단장을 했다. 연둣빛 나뭇잎들은 아침 햇살을 머금고 살랑살랑 지나가는 바람과 인사를 한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몇 년에 한 번씩 나올까 말까 한 한국어 단어들이 있다. 소리 내어 단어를 말하다 보면 참 생소하기도 하고 기억의 저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단어 조각들이 그저 놀랍기도 하다. 오늘은 ‘연두’라는 단어가 그러했다. 참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단어. ‘연두’라는 단어가 참 예뻐 또박또박 몇 번을 반복해 말해본다. 겨울을 잘 이겨내고 고개를 빼꼼히 내민 연둣빛 잎사귀들이 숨을 감쌌다. 연둣빛 담요 안에 봄이 피어올랐다.


이 숲을 알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여름 나는 이 숲에 이끌리듯 매일매일 숲 속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숲은 그냥 숨만 쉬라고 했다. 나에게는 숨이 있으니 그 숨을 가두지 말고 내어 쉬라고 말했다. 그리고 숨을 내쉬니 천천히 걸어 보라고 했다. 그렇게 괜찮아질 때까지 걸을 수 있는 길을 내어 주었다.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니 고개를 들어보라고 했다. 나무도 보고, 철썩이는 바다고 보고, 안개 낀 수평선도 보고, 또랑또랑 흐르는 시냇물도 보고 살랑이는 나무도 보고 절벽에도 꿋꿋이 서 있는 나무들도 보라고 했다. 그렇게 내 눈앞에 나타난 모든 것을 담으니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들이 내 것이 된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숲은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모아 온 순간들은 내 마음을 채워주고 내 다리는 조금씩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사하며, 기도하며 걷기

밑 빠진 독처럼 마음이 새는 날들이나 마음에 감사가 떨어지지는 날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이 숲을 찾는다. 이 숲에 가면 떨어졌던 감사가 다시 차곡차곡 차오른다. 아름다운 것을 본다는 자체가 감사하기도 하고 그 ‘순간’ 내가 ‘여기’에 ‘숨 쉬고 있다’는게 감사하게 된다. 건조하고 까슬까슬했던 마음이 보슬보슬해진다. 나에게 모질었던 마음도 다른 사람들에게 뾰족했던 마음도 동글동글해지고 창조자에게 자연스러운 감사가 새어 나온다.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숲 속에서 잃어버렸지만 그 떨어진 지점에서 누구도 물건을 옮겨 놓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다시 오리라는 믿음. 찾는 여정을 시작할 때 이곳으로 오리라는 사랑이 묻어 있다. 그것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누군가가 가져가지 않고 그대로 놓여 있을 잃어버린 그것들을 찾을지 모른다.



숲 속에서의 인사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원하면 우리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 허락된 시간에서 그 사람에게 집중하며 관찰하며 알아가면 좋은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기초가 다져진다. 숲 속을 걸으며 숲이 품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숲을 찾아오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숲이 필요해 모여든 사람들이다. 숲이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눈을 피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의 룰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사람들을 내가 다 이해하는 듯, 우위에 있는 듯 눈 마주침에 지배하려는 마음을 빼야 한다. 그냥 그 사람이 눈 마주침이 준비가 되어있는지 살피고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조심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인다. 언젠가부터는 이 속에 존재하는 그 사람의 세계를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이 허락지 않는 날은 그냥 시선을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 보통은 그저 말하지 않아도 널 이해해. 잘하고 있어.라는 시선을 미소와 함께 보낸다. 그리고 조금 더 마음이 괜찮은 날에는 굿 모닝이라고 작은 목소리로 미소를 지으며 오늘 하루를 잘 보내라는 나의 바람을 보내면 된다.



그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모두 연결된 하나라는 느낌이 든다. 그 연결의 끈을 놓지 않고 조심스러운 위로가 되어주길 바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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