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지 못했던 이유
어렸을 때 나는 운동을 꽤 잘하는 아이였다. 달리기도 빨랐고 심지어 멀리뛰기에 소질이 있어서 큰 대회에도 나갔었던 기억이 있다.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면서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졌었다. 남편과 조깅이라고 함께 하러 나가면 뛰질 않는 나에게 남편은 왜 뛰질 않는지 의아해했다. 그리고 나는 남편까지 달리지 못하도록 막는 훼방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내가 예전에 달리기 대회에 나갔다는 말은 이제 남편은 거의 믿지 않는 눈치다. 굳이 설득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냥 과거에 한때 옛날이야기를 하듯 의미 없는 이야기를 허공해 해대곤 그게 끝이었다.
달리지 않았던 이유는 참 많다. 노트에 적저면 리스트로 꽤 긴 목록이 나오지 않을까. 내가 의도적으로 달리지 않았던, 달리지 못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든, 중요한 건 난 달리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슬로우러닝으로 일 년이 넘도록 달릴 생각은 좀처럼 나질 않았다. 걷는 것도 좋았고, 달려야겠단 계획이나 의도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일 년 가까이 걸으며 달릴 생각을 시작했고, 이제 슬슬 달리기에 대해 알아간다. 달리기를 하면서 예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달리기는 ‘운동’이라는 생각에 대한 생각
그 한 가지는, 달리기에 대한 나의 기존 생각이다. 나는 달리기를 철저하게 ‘운동’이라는 범주에 넣어 놓고 그 이상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달리기’ 라는 말 자체가 ‘달리다’하는 동사 이듯이 그저 몸의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는 행동을 뜻하지만 “달리기 하러 가자”를 “운동하러 가자”라고 알아듣지 않고 “그냥 부담스러워 피하곤 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아주 멀리 귀향을 보내버리고 잊고 지내고만 싶었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우리는 익숙한 것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우리 삶에는 너무나 귀한 것들이 많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하는 것. 없으면 안 되는 것. 없어지면 너무나 마음이 아픈 것들. 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특별함을 일반화시키곤 한다. 공기, 물, 시간, 오늘 하루, 가족, 사랑 등등. 나에게 ‘달리기’도 그랬다. 그냥 언제든 달릴 수 있기에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굉장한 스포츠나 쿨한 장비들이 필요하지 않은 맨몸으로 그냥 냅다 달리기만 하는 ‘달리기’가 너무나 익숙해서 특별하게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찾아낼 수 있다.
많은 예술작품과 비즈니스 혁신들은 단 한 가지의 대단한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평범함에 숨겨져 있는 특별한 눈을 키울 때 우리는 무엇인가는 시작할 수 있으며, 창조해 나갈 수 있다. 평범하고 익숙하기만 한 달리기에서 나는 요즘 ‘특별함’을 시도 때도 없이 발견하게 되었다.
40여 년을 살며, 운동으로만 생각했던 달리기에는 나를 만나는 기적 같은 ’ 나와의 미팅‘의 시간 ’간절함을 전하는 기도’의 시간 ‘삶을 시물레이션하는 리허설’의 시간들이 있다. 그 많은 날들을 달려 나가 보려 한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