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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란 Aug 26. 2020

죽음과 삶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안데르센과 키에르케고르를 만나고...

덴마크에 처음 이사를 온 우리 부부는 집을 구할 때까지 에어비앤비를 통해 몇몇 곳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코펜하겐 시내에서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는 곳 눼레브로(Nørrebro) 지역에 처음 묶게 되었다. 유난히 키가 컸던 첫 에어비앤비 집주인은 변기며, 침대며 가구, 주방의 싱크대까지 모두 다 자신의 사이즈에 맞추어 온 집안을 레노베이션을 해 놓았다. 변기가 너무 높아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아 머털 웃음을 지었던 그때. 우리가 유난히 작게 느껴졌었다. 거인 집에 들어온 같은 그때의 낯설었던 눼레브로. 다시 찾은 그곳은 덴마크에 왔던 그 느낌을 다시 불러왔다.



황톳빛 노란 담장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그 에어비앤비 집 앞에 긴 노란 담장이 보였다. 사인도 없고 무엇인지를 가름할 수 있는 힌트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 무엇인가가 있었지만 한눈에 알 수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그 문을 들어서 본다. 그때는 둘이서만. 지금은 아이 둘도 함께 데리고 왔다.

두껍고 무거운 철문을 통과해 본다.


죽은자들이 잠든 곳, 처음 이곳이 낯설고 무섭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공동묘지의 무서운 이야기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두려움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밝길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 속에 담장 안에 안전하면서도 당연하게 자리 잡은 공동묘지는 차분하고 평온하게 나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평온하고 포근한 이 느낌은 무엇이지?



햇살이 맑은 날. 내가 상상하는 슬프고 암울한 무거운 느낌이 아닌 너무나도 차분하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공동묘지 안의 풍경에 놀랐다. ‘죽음’이 주제인 이 곳에서 암울하고 어두울 거라는 나의 상상은 틀렸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생기로 채우고 있었다. 조깅하는 사람들, 잔디에 않아 책을 읽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 아이들을 재우러 유모차를 끌며 산책하는 부모들이 보인다.


자전거에 기대어 독서를 하거나 아이를 재우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엄마의 모습


공동묘지 산책의 묘미


나무와 식물들 하나하나에 죽은 자를 위한 메시지를 전하는 듯 예쁘고 특별하다. 자연스럽지만 정성이 든 조경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은 나에게 연극 속 배우들처럼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연기한다. 죽은 자 들과 공간을 공유한다.


그리고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생각해본다. 일상적이고 조금은 가까이에 두고 상기하는 이들의 모습이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무서웠던 마음이 풀리고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며 무시할 것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음을 느낀다. 아이들과 남편과의 산책길에서 이곳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본다.



내가 덴마크에 살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그들을 만나러 간다.


그곳을 다시 한번 둘러본다. 이 공동묘지는 특별한 공동묘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덴마크인들 중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번 키에르케고르 14번 안데르센


안데르센 (H.C Andersen) 1805-1875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 동화 작가이자 여행가이며, 여행 찬양가 였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금만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조용한 묘비 앞에는 작가인 그를 위해 사람들이 남기고간 펜들이 꼿혀있다.

덴마크가 동화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안데르센의 덕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의 동화는 한국인에게 그의 동화의 배경이 되었으리라. 어렸을 적 읽었던 공주와 왕자가 살던 곳, 성냥팔이 소녀와 인어공주가 있던 그 상상 속의 나라는 바로 덴마크였다. 그가 잠들어 있는 곳은 그다지 큰 비석이 있거나 특별한 장식이 없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사람들이 두고 간 펜들이 가득 있었다. 작가로서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에게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로 기억되는 그의 삶. 안데르센에게 인사를 건네본다.




키에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 1813-1855

그의 철학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이름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에 대해 검색을 하고, 생각이 좀 자란 지금에서야 그의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다.


“진리는 객관성이 아니라 주관성이다.”

“참다운 나란 무엇일까?”


진정한 삶이란 비객관적이고 주체적이며 실천적인, 즉 각자의 개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실존주의 철학자란다. "인간 일반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가 아니라 "특정 인간인 내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이론을 설파했다고 한다. 조금은 그의 사상과 생각을 이해해보며 배워본다. 지금 생각해보니 현재의 덴마크 사람들의 생각과 아주 닮아있다.



그 노란 담장 너머에 무섭게만 생각했던 죽음은 친근하고 따뜻함을 담고 있었다.



죽은자들이 있는 곳. 그곳을 가깝게 벗 삼아 지내는 덴마크인의 방식이 현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생각이 든다. 나와는 상관없었던 내 일상에서 관련이 없다고 무시해 버렸던 삶의 부분을 다시 상기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죽음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니 마음이 겸손해지고, 걱정했던 게 좀 부질없어지고, 지금 순간을 감사하게 된다.



죽음은 삶의 부분이다.



묘비와 묘지의 옆에서 산 사람으로서 먼저 죽은자들을 옆에 두고 죽음이 그렇게 멀리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상기해본다.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음을 받아들여 본다. 아주 현실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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