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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연 Feb 08. 2021

목련의 눈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눈이 내렸다가 녹기를 반복한 땅이 폭신하다. 걸음마다 차갑고 촉촉한 기운이 발을 타고 올라온다. 겨울의 공원은 스산했다.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가 가지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손이 아리지 않다면 나뭇가지 그리기에 좋을 뻔했다.


해가 바뀌면 괜히 기대를 한다. 새해에는 건강해져서 작품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가진다. 지난달에는 연하장을 만들려고 작품 사진을 찍었는데 새 작품은 두 개뿐이었다. 그마저도 아프기 전에 미리 배접을 해놓았던 작품이라 힘이 덜 들어간 것이다.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던 내가 그리웠다. 같은 기대를 하는 새해가 세 차례 반복된 후부터 나는 나를 희망 고문하지 않게 되었다.

 
공원의 모퉁이에서 걸음을 멈춘다. 자주 다니던 길인데 이제야 보았다. 나뭇가지 끝이 보송보송하다. 목련이 눈을 뜬다. 봄이 오고 있다.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는 이름의 목련(木蓮)은 붓을 닮아 목필(木筆)이라고도 부른다. 나무에 피는 붓. 나뭇가지는 좀 가느다란 붓대 같고, 눈은 붓촉처럼 끝부분이 완만하게 모였다. 봉오리도 붓 같지만 목련의 눈에는 부드러운 털이 있어 나는 눈이 더 목필이라는 이름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나도 목련 눈 크기 만한 붓을 가지고 있는데 붓촉이 짧고 탄력 있어 좁은 면적에 채색할 때만 드는 붓이다.



목련은 지난봄에 꽃을 피운 자리에 다시 눈을 틔운다. 목련 옆에 선 나무는 산수유 나무일 것이며 마주 보는 길에 줄지은 나무는 벚나무일 것이다. 흰 목련꽃, 노란 산수유꽃이 어우러진 장면과 연분홍 벚꽃이 4월의 거리를 채우던 모습을 기억한다.



자연은 순환한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자연 속의 미세한 인간은 자라고 늙으면서 자연을 스쳐 지나간다. 인간이 희망하든 절망하든 자연은 시간과 계절에 의미를 두지 않고 할 일을 할 뿐이다.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린 후에 반드시 꽃을 피우는 자연 속에서 내 인생에는 바람과 눈을 견디는 날이 영원할까 봐 두렵다.


인생에 봄이 오기를 바란다는 말은 하지 않으려 한다. 병원을 다니고 운동을 하고 돈을 벌며 그림을 그리워한다. 나도 나만의 역할을 찾고 행동하며 의연하게 나의 시간을 보내려 한다. 그러면서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오길 기다릴 것이다. 언제든지 기다릴 것이다. 그때가 오면 목련의 눈을 닮은 붓으로 종이에 봄을 채색하고 싶다.


#봄 #에세이 #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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