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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연 Nov 20. 2022

되고 싶은 사람이 되려는 시도

나만의 책가도


옛 그림을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며 시간의 축적과 환경의 변화에 놀라고, 단원 김홍도의 <길쌈>을 보며 고단한 노동으로 이어간 생활에 대해 생각한다. 민화로 전하는 <모란도>를 보며 부귀영화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은 긴 시대를 거치면서도 공통됐다는 사실에 정감이 간다.


책가도(冊架圖)에는 공부하는 삶이 깃들어 있다. 가죽 끈으로 꿰매어 제본한 책들이 포개지고 두루마리 형식의 문서 어쩌면 그림들이 쌓였다. 문방사우는 물론 도자기, 향로, 화병, 꽃, 과일도 함께 등장한다. 18세기 이후 해외와의 문물교류로 안경, 시계 등이 포함된 책가도도 있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던 물건을 그렸기에, 책가도를 보면 책꽂이를 사용하는 인물의 취향이 드러난다.

이형록, <책가도>,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153.0×352.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지난주 강의에서는 책가도를 보면서 학생들과 ‘나만의 책가도 만들기’ 활동을 했다. 빈 책장이 그려진 종이를 나눠주면 학생들이 각자 좋아하는 책과 물건을 그려서 자신과 서로의 관심사를 알기 위한 활동이었다. 학생들이 작은 손으로 색연필을 들고 책장을 채워갔다. 『아몬드』,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같은 성장소설, 로맨스가 더해진 『첫사랑 라이브』,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요즘 학생들도 보는- 『셜록 홈스』와 『명탐정 코난』, 인문학과 과학을 담은 『Why』 시리즈 나는 잘 모르는 긴 제목의 웹툰과 웹소설이 책장에 꽂힌다. 책이 없는 부분엔 캐릭터 무드등, 콘센트를 꽂아 충전 중인 휴대폰, 태블릿 PC와 펜슬, 아이돌 가수의 응원봉과 앨범이 있다. 아이스크림이나 어항은 대중적이다. 쿠션을 넘어 베개와 이불도 있다. 책장의 가장 윗부분엔 가랜드를 붙이고 책장 옆면엔 거울을 걸었다. 거울 속에 작게 기분 좋아지는 문구를 써놓는다. 책가도를 완성한 후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의 장르와 주제가 무엇인지 발표했다. 다음 수업 시간에 ‘나뭇잎 소설 쓰기 활동’을 한 후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책거리 병풍>, 25.5X106.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현재 나의 책가도는 어떤 모습인가. 미셀 들라쿠루아가 그린 파리 풍경이 포개진 탁상 달력, 손이 아파 마련한 자동 연필깎이, 미니언즈 연필꽂이, 취재할 때도 가끔 들고 다니는 미러리스 카메라, 동전이 생길 때마다 넣는 캡틴 아메리카 저금통, 가족사진 그리고 책들이 자리를 잡았다. 다 읽었지만 또 읽고 싶어 가까운 곳에 둔 수필집, 감동을 주는 시집, 아직 읽지 않은 인문학서, 선물 받은 소설, 저자의 사인을 받은 그림책, 전시회에서 산 도록, 회화 이론서, 회화 실기 방법을 다룬 책이 있다. 펼치지 않은 새 드로잉북, 내가 들었던 또는 내가 만들었던 강의의 인쇄물 묶음도 한자리 자치한다. 나의 일상과 일이 드러나는 책가도다. 책가도를 보면서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한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을 때 나의 책가도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여전히 화가가 되고 싶으니 나의 책장엔 내가 모르는 미술의 이론과 실기가 담긴 책을 꽂아두고 날마다 뽑아 펼쳐서 읽은 후 익혀야겠다. 도록을 보면서 좋은 그림을 배워야겠다.

<책거리 병풍>(일부), 조선, 세로 125cm, 가로 47cm, 세로 53.5cm, 가로 28.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

바라는 것에 맞춰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려는 첫 번째 시도다.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내게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본다. 독서는 비교적 쉬운 접근법이다. 도서 쇼핑몰이나 도서관 사이트에서 키워드를 입력하고 책을 찾는다. 그 후 책을 구매하거나 빌려서 읽는다. 휴대폰이 있다면 닮고 싶거나 영감을 주는 대상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팔로우할 수도 있다. 이동이 가능하다면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을 때 설 장소에 가서 공간을 시각적으로 확인한다.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온오프라인으로 환경을 만들어본다. 나는 우선 미술책을 읽고 미술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되도록 미술관 근처의 길로 다녀야지. 앞으로 여러 책이 나의 책가도에 머물다가 중고서점으로 또는 지인에게 갈 것이다. 읽은 책을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책장이 크고 서재가 넓으면 더 좋다. 책과 더불어 계절꽃을 담은 크리스털 화병과 여행 때마다 사모을 스노볼도 책가도에 그리려면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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