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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연 Dec 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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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문학동네,  2022


서사의 3요소는 ‘행동’, ‘시간’, ‘의미’다. 글쓰기 수업을 하며 서사를 공부하는 차시에는 사진 네 개를 활용해 짧은 글을 쓰는 활동을 한다. 사진은 배드민턴 치는 모습, 요리하는 모습, 사진 찍는 모습, 책 읽는 모습 등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을 섞어 준비해 간다. 학생들은 사진을 원하는 순서로 나열해 각자 이야기를 만든다. 이때 서사의 3요소 중 빠트리기 쉬운 것이 ‘의미’다. 앞의 행동과 뒤의 행동이 단순 나열이 아니라 연결돼 있어야 한다. 활동 전 사진들 사이에 인과관계를 만들어 짧게라도 쓰라고 지도한다. 그러면 배드민턴을 치고 떡볶이를 먹는 것보다, 배드민턴을 치니 배가 고파 떡볶이를 먹는 이야기가 되고, 여행을 갔다가 밥을 먹는 것보다 여행을 가서 지역 특산물을 다루는 요리 교실에 참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와 메신저로 근황 이야기를 하다 최근 완성한 아크릴 작업 사진을 전송했다. 내 실력보다 과한 칭찬에 민망했다. 내가 그림을 잘 못 그린다 이야기와  아크릴은 배우지만 그림은 그리지 않는다고 했더니, 친구가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고 다. 아픈 후에는 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시도를 했으나 완성한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고 여러차례 패배했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지나가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하다 기법을 배웠다. 사군자, 캘리그래피, 종류별 일러스트를 배웠고 지금은 아크릴을 배운다. 주 1회 아주 느슨하게. 친구의 메시지를 보고 내 인생이라는 서사에서 행동, 시간, 의미를 생각했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지금 의미 있는 행동을 하고 있을까.


김연수 작가의 소설에서는 온기 어린 긍정이 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는 인간을 향한 애틋한 시선이 느껴지는 여덟 편의 소설이 담겼다. 첫 번째 수록된 단편은 표제작으로 소설집의 주제를 관통한다. 외로움과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미래를 기억해야 할 이유와 미래를 기억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하는 책이다. 소설 속 인물 지민은 엄마가 쓴 금서를 찾는다. 시간여행을 하는 독특한 내용의 금서를 설명하면서,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이 이 순간의 현재만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과거에서 현재의 원인을 찾는다는 대화가 나온다. 용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기억할 때 가능해진다는 문장과 함께. (29~30쪽)

나는 실패한 스스로를 오랜 시간 동안 용서하지 않았다. 지금도 완전히 용서한 것은 아니다.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하니 적당히 참고 대강 모른 척해준 것뿐이다. 실패한 김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다. 나의 실패를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독서는 좋은 도피처다.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34쪽) 미래를 선택하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34~35쪽) 한다는 걸 믿고 싶다. 나는 포기할 마음을 한 번 더 거둔다. 과거의 고통으로 향하는 생각을 애써 평범한 일상으로 끌고 온다. 절망의 나열로 빠지는 문장을 의식해 희망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일상이 연결돼 인생이라는 서사를 단단하게 만들기를 기대하면서 작고 성실한 희망을 징검다리 삼아 미래로 향하는 길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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