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수연 Nov 21. 2023

짝사랑

운명인 척했다



업무차, 지은 지 100년 넘은 한옥에 간 적이 있다. 나와 동료는 윤기 나는 나무 탁자 앞에 앉았다. 천장엔 서까래가 보이고 벽면은 그림 액자로 장식한 방이었다. 옷걸이는 동물 모양으로 깎아 만든 조각품이었다. 골동품과 고가구가 고요한 안정감을 자아냈다. 간식으로 앞에 놓인 대추차와 떡의 담음새도 아름다웠다. 미술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가족이 많다는 주인의 소개처럼 그 공간미술가의 작품이었다. 열린 문 밖으로 늦가을의 정원이 보이고 풍경 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동료는 주인에게서 귀티가 난다고 말했다. 연예인을 보는 것 같았다고도 했다. 나도 그런 기분이었다. 그분의 언행은 기품 있고 사랑스러웠다. 오래 차를 타고 갔던 길이라 오는 길도 오래 차를 타고 왔다. 멀미와 함께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은 화가가 되면 안 됐구나. 살면서 종종 생각했던 내용을 한 번 더 생각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해 언 손을 녹였다.

부모님은 내가 미술보다 다른 과목을 더 좋아하길 기대하셨고 나는 말 잘 듣고 손 안 가는 자식이었다.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전공을 살려 일을 하며 사는 듯했다. 나는 일도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던 사고와 이사와 사직으로 바뀐 생활환경에 방황을 하다가 나는 멋대로 미술을 선택했다. 당시 유일한 선택지처럼 보였다. 대학원 졸업 후 전시를 하며 화가로 살았다. 꿈은 있고 돈은 없었다. 즐겁기는 했다. 물감 값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다가 한 회사에서 손에 병이 다. 여러 병원을 거치면서 희망 없는 말을 들었다.


꿈과 돈과 건강이 없으니 나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이 정도면 우주가 나에게 화가가 되지 마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내가 눈치가 없어서 여태 화가가 되겠다며 설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주위사람들보다 좀 잘 그린다고, 아무도 그림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좋아한다고, 기억나는 어린 시절부터 장래희망은 화가라는 이유를 만들면서 내 운명인 척했다. 좋아하는 상대의 일상적인 행동에 자기 마음을 투사해 의미를 부여하고 ‘저 사람도 나를 좋아하나’ 착각을 하듯 나는 그림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림은 그대로 존재하며 역사 속에서 흘러갈 뿐인데. 착각에 대한 자각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으나 몸이 아프니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이 남지 않았다.

짐이 된 꿈이다. 매일 내가 만든 작품사용하던 그림 도구를 다 버리는 생각을 했다. 짐을 떠안고 사느라 공간이 더 필요했다. 한 평 땅값이 얼만데, 짐이 공간을 차지하느라 부동산을 펑펑 낭비하고 있었다. 화가로 지냈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작품을 버릴지 말지로 고민했다. 재료비기 많이 들았는데 작품이 커서 버릴 때도 돈이 들었다. 종이를 뜯어내고 화판에 대형폐기물을 붙이는 행동을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럼에도 못 버린 작품이 많다. 그건 못 버리겠다. 그림 도구는 10%도 버리지 못했다. 그것도 못 버리겠다. 미련하게도 아직 짝사랑이 진행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말은 중간고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