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창가 철학

세상과 집 사이, 따뜻한 경계에서

by 은기

나는 요즘 창가에 머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그곳은 햇살이 가장 먼저 찾아와 나를 안아주는 자리이자, 바람이 가장 조용히 길을 묻고 지나가는 자리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깥세상이 가장 투명하게 보이는 나만의 관찰석이다.


예전의 나는 현관문만 열리면 그 틈을 파고들어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계단이 저 높은 곳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코끝을 스치는 수만 가지 냄새의 주인은 누구인지,

이 거대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내 발바닥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가운 길 위에서 길을 잃었던 그날 이후, 나는 세상을 보는 조금 다른 방식을 배웠다.

이제 나는 창가에 앉아 아주 천천히, 그리고 깊게 바깥을 바라본다.


나무 위에서 수다를 떠는 새들의 분주함,

길 위를 바쁘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그리고 계절을 담아 낯선 냄새를 싣고 오는 바람의 결.

그 모든 역동적인 풍경이 투명한 창문 너머에서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나는 그 움직임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음미한다.

창밖의 세상은 여전히 크고 넓다. 그리고 그 앞에 앉은 나는 여전히 작고 보드랍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거대한 세상을 내 발로 모두 밟아보지 않아도,

그 속에 직접 뛰어들지 않아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세상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솜방망이 같은 앞발을 창틀에 가지런히 올리고 눈을 가늘게 뜬다.

등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담요처럼 포근하게 나를 덮어준다.

밖은 여전히 요동치며 움직이고, 집 안은 변함없이 평온하고 조용하다.

그리고 그 두 세계가 만나는 얇은 유리창 사이에 내가 있다.


창가는 세상과 집 사이의 가장 가늘고도 견고한 경계다.

나는 오늘도 그 경계 위에서 잠깐의 사색에 잠긴다.

나에게 집은 가장 안전한 요람이고, 창문은 세상을 향해 열린 나의 커다란 눈이다.


나는 이제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이미 세상의 일부분이다.





� 명언 한 줄

“세상을 직접 밟아보지 않아도, 사랑받는 자리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할 때가 있다.”

일요일 연재
이전 16화16화. 엄마의 외출 감지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