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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찌니 Jan 22. 2024

매일 마시던 커피가 갑자기 쓰다?

하루 커피를 아침 점심 저녁 밥 보다 더 꼬박꼬박 챙겨 먹던 사람이 갑자기 커피가 써서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겠다? 


입이 변한 걸까? 커피맛이 변한 걸까?


가끔은 별것 아닌 변화에 큰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 어제와 크게 변화되지 않은 환경 그런데 문득 같은 길을 걷다 '난 누구 여긴 어디?' 같은 신선한(?) 느낌과 함께 모든 순간이 크게 이질감으로 다가올 때가 한 번씩 있다. 보통은 그러면 그날의 컨디션이 그런 날인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유독 크게 거슬리는 날, 무언가 큰 변화가 반드시 꼭 있어야만 할 것 같이 억지스레 이유를 찾아보곤 한다 


매일 밥은 안 먹어도 카페인은 충전해야 한다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녔다. 

어릴 때는 이렇게 마셔댈 거면 제대로 내려 먹자라며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격하게 커피를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카페인 과다로 몸에 이상이 와 심한 수전증으로 한동안 커피를 멀리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쉬이 사라지지 않던 커피 사랑이었다. 집착과도 같던 커피사랑은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며 끊임없이 이어갔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몸은 끊임없이 말해 왔었다. 

"난 카페인이 싫어!!"라고. 


학창 시절 자판기에서 나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심장이 격하게 뛰는 것을 경험했었다. 그 이후로는 탄산음료만 마셔도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뭔가 하이텐션이 가동되는 느낌에 대학 시절 2년 넘게 카페인이 든 것은 입에도 대지 않았었다. 카페인 때문이었는지 가당 때문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길이 없지만 그때는 카페인 때문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에 카페인을 못 마시는 사람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탄산의 시원함보다는 탄산의 톡 쏘는 맛이 불편함으로 느껴졌기에 굳이 찾아 마실 이유도 없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혼자 떠난 배낭여행, 그곳에서 처음 에스프레소를 접하고 미친 듯이 사랑해 빠져 버렸다. 무슨 열병에 걸린 듯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찾아 이탈리아의 카페를 쫓아다녔다. 맛도 모르면서 첫사랑의 열병에 앞뒤 없이 덤벼드는 사춘기 어린 청춘처럼 그렇게 내 안에 커피 향이 감도는 것이 너무 좋았다. 

심장이 뛰어도 사랑에 빠진 이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지독한 사랑은 20년, 이제는 식어버린 열정에도 습관처럼 가장 큰 잔 가득 커피를 채우고 한 모금 삼키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또, 급 제동이 걸린다. 

"그만!!"


어김없이 벤티 사이즈에 가득 담아 온 커피를 한 모금 넘기는 순간 뱉고 싶단 생각마저 들 정도로 입안 가득 쓴맛이 강한 전율을 동반하며 미간에 인상을 가득 찌푸리게 했다. 미처 삼키지도 않았는데 속 쓰림이 느껴지며 커피를 저만치 밀어두곤 일을 시작했다. 카페인이 들어가지 않은 뇌는 여전히 습관처럼 카페인을 찾았지만 동시에 거부했다. 어이없는 반응에 커피에 손을 뻗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마시고 싶은 것일까 싫은 것일까?

브랜드 프랜차이즈를 고집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브랜드 프랜차이즈들은 그들만의 룰에 의해 늘 유사한 맛을 유지한다. 내 원하는 맛이 아니더라도 그들만의 브랜딩을 위해 맛과 향을 유지한다고 한다. 그럼 커피맛이 변하지 않았을 확률이 더 높은 거겠지? 아. 마. 도...???


그럼 내 애정이, 입맛이, 어느 날 갑자기 한순간에 변심해 버린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처럼 변한 걸까?

아님,  정말 오늘 바리스타의 실수로 커피맛이 유독 쓴 걸까. 몸이 안 좋아서 쓰게 느껴질 수도 있고 기분 탓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고 맛이 쓰게 느껴질 다른 이유가 수십 가지는 될 테지만 오늘따라 유달리 내 마음이 변한 것 같은 이 느낌이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사춘기 같아 횡설수설 말이 길어진다. 

왠지 지금 놓아버리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사춘기 시절의 긴 열병 같은 짝사랑을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갈 것 같은 마음에 다시는 커피를 돌아보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에 기나긴 주절거림이 푸념처럼 허공에 떠돈다.


한창.. 변화가 두려운 40대는 작은 것도 큰 의미를 둘 나이지. 

아직도 한창 크는 중인 40대야 말로 진정한 사춘기가 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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