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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새롭지 않은 만남에서 시작된다

새롭게 re:frame

by 글린더
공모전?


매일이 도전이고, 매일이 시험과도 같은 요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놓여있는 지역신문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종종 같은 자리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하고 먼지가 쌓이며 발에 치이던 지역 신문을 집어 들었다.


이 신문을 집어 들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굳이 허리를 숙여 먼지를 털어내며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신문을 집어 들고 집으로 들이는 행위는 그다지 자주 하게 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지류 신문보다는 내 손 안의 작은 세상을 보여주는 휴대전화가 더 쉽고 편리함에 익숙해진 탓이 크리라.

어쨌든 그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집어 들고 들어온 몇 안 되는 날 중의 하나였다.


집으로 돌아와 신문을 훑어보다 한 섹션에서 눈길이 멈춘다.

문학공모전. 내가 사는 동네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제1회라는 문구에서 멈춘 것인지,

익숙한 거리와 익숙한 단어에서 오는 반가움에서 눈길이 사로잡힌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얼마 전 준비하던 공모전을 실수로 눈앞에서 놓쳐 접수조차 못한 경험 때문에 공모전이라는 글 자체에 멈춘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마주한 계단문학상 공모전.

625 피란민의 삶과 168 계단의 역사적인 스토리를 소재로 한 열린 문학상이라는 점에서 일단 노트북부터 켜고 본다. 그간 글감이 떠올라도 글도 써지지 않고 그저 하릴없이 의미 없는 유튜브와 릴스를 밤이 새도록 보다 겨우겨우 잠에 들곤 하던 나날의 연속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신문 한 구석 손바닥만 한 공간에 올라온 약식 공고만 보고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홈페이지를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고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도 모른 채 닥치는 대로 써내려 갔다.

처음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갔다. 소설처럼 가상의 사람들을 세워두고 그들의 삶을 적어 내려 가다 또다시 멈췄다. 그리고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내 가족을 바라보는 나의 시점, 그들의 입장이 되어 바라본 시점으로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며 글을 적다 보니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어떤 것은 일기 같기고 하고 어떤 것은 동화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러브레터 같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쓰는 게 재미있어졌다.

내 글이 갑자기 수려해지거나 멋들어진 표현들이 춤추는 전문 작가의 글이 된 것도 아닌데 그냥 술술 적어내려 가졌다. 어차피 계속 잠들지 못하는 밤이 계속되었던 터, 이리 못 자나 저리 못 자나 크게 상관도 없을 만큼 그렇게 밤새 이것저것 적어내려 갔다.


그렇게 다음 날 밤도 뜬 눈으로 컴퓨터 앞에 꼬박 붙어 해 뜰 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미뤄 뒀던 업무도 지난밤 중간중간 다 해치워 버리고, 마음의 짐이 되었던 여러 일들이 잠들지 못한 지난 며칠의 밤사이 휙휙 물꼬들이 트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해야 할 것들과 하고 싶었던 것들이 예쁘게 정렬을 하고 꽉 막혔던 것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멈추었던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느낌이다.


스스로에게 한계를 씌우고 부족함을 들춰가며 계속해서 쭈글어 들어가던 요즘이었다.

개인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여러 가지 상황들이 켜켜이 쌓여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우선순위와 중요도에서 항상 부딪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목표마저 잃어 표류해 버린 상태였다. 옳다고 열심히 했던 것들이 그르고 좌절하고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의 의욕조차 사라져 그저 시키는 것들도 근근이 겨우 해가는 시간들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앞뒤 꽉 막힌 답답한 상화에 힘도 의욕도 잃어가고 있을 때. 그러다 문득문득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작은 틈바구니에 짙은 안개가 걷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마도 이번에는 이 공모전이라는 것이 내 삶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준 것 같다.

한숨이 가득했던 가시 돋친 말들은 조금 여유로워지고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그러다 엄마와 저녁을 먹고 모셔다 드리고 오는 길, 아.. 우리 엄마가 625 전쟁통에 외할머니의 품에 안겨 지난한 삶을 살아오신 살아있는 역사구나 싶었다.

그렇게 담담히 옆에서 보고 들은 엄마의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외할아버지를 찾아 남한으로 온 할머니와 고단했던 엄마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엄마의 입장에서 적어 내려 간 글은 급기야 공모전에서 내건 최대 분량을 넘어버렸다. 줄이고 줄여 최대한 담담하고 담백하게 정리하고는 제출처를 확인하려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작성해야 하는 양식과 서류가 여럿이다.


깔깔거리며 놀던 아이를 재우고 다시 노트북을 켠다.

아무래도 오늘도 잠은 다 잔 것 같다. 그런데 기분은 썩 괜찮다.


아무것도 바뀐 상황은 없지만 내게 씌워뒀던 어떤 프레임이 사라진 것인지 한층 홀가분하고 가벼워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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