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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Dec 14. 2022

파친코

별이 그려지는 사람들의 배치도

내가 이런 유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몇 대에 걸쳐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기.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놀랍게 읽어내려 간다.

‘이런 사람이 있다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일제 강점기인 1910년부터다. 장애가 있는 훈이와 양진의 만남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들의 딸, 선자로 이어지고 선자는 연인으로 고한수를 만난다. 고한수와의 만남은 선자를 예상치 못한 길로 들어서게 한다. 선자는 고한수가 아닌 백이삭과 결혼을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고 백이삭의 형네 부부인 백요셉-경희 커플과 살게 된다. 선자는 일본에서 차별받는 조선인으로 살며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를 낳는다. 이야기는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 이어진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솔로몬이 결국 파친코를 운영하기로 결심하는 1989년까지, 80년의 세월이 알록달록한 무늬로 담겨있다.


책 파친코는 여러 인물들의 인생과 전쟁통이었던 시대상, 전쟁인 끝난 후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야 했던 이민자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은 언제나 '일본에 남을 것이냐?, 남한에 갈 것인가?, 북한으로 갈 것인가?'삶의 질문이 따라다닌다. 선자네 가족은 일본에 남기로 한다. 남한은 정치판이 어지럽고 가난하기는 일본보다 더하고 북한으로 가는 사람들은 족족 죽는다는 소문이 흉하게 돌았다. 갈 곳이 없는 이민자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은 또 하나의 선택지 나라로 부상한다. 파라다이스처럼 여겨지는 미국. 미국에 가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했다.  나라가 온전치 못 하니 조선인들은 갈팡질팡이다. 흑인이 백인에게 차별당하는 역사는 꿰뚫고 있지만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이 얼마큼 차별받고 있는지는 관심없고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연히 우리 역사의 한부분인데.


이 긴 서사를 끌고 가는 중심 인물은 선자다. 선자는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받고 자라서인지 지혜롭고 당차다. 못 배웠어도 자신의 존재와 인생을 존중할 줄 알았다. 몸은 작지만 다부지고 탱글탱글하다. 그래서인지 선자는 어디서든 빛이 났다. 현실적인 성격 덕에 선자는 끝까지 노력했고 끝까지 사랑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살아갈 에너지를 잃지 않았다. 그래서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선자는 선자스럽게 자신을 지키고 가족을 지킨다.  


선자가 어릴적부터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이야기가 부드러운 강물처럼 흘러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캐릭터들이 놀랍도록 선해서 인상적이었다. 이런 선한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건 작가가 그만큼 인간을 믿고 있다는 증거다. 잔인한 시대에도 인간이 선함을 지킬 수 있을까, 난 의심하고 있었나 보다.

‘이럴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을 보는 눈도 생기는 걸까.’

그러다 설득당했다.  

‘그래, 전쟁통이라도 고귀한 사람들은 그들의 신념을 지겨내겠지. 어려운 처지라도 돈을 벌고 집안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입는 법이지.’


선자 주위에는 좋은 사람밖에 없다. 선자, 경희, 백이삭, 백요셉, 고한수(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다), 양진, 그 밖의 많은 인물들.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읽는 내내 가슴에 밀려왔다. 폭풍 같은 사건 속에 휘말려 있어도 좋은 사람과 함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면 괜찮은 걸까? 좋은 사건, 나쁜 사건 할 것 없이 인생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야 할 것만 같은데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배치가 더 중요한걸까?


선자 주위로 빙 둘러서 반짝이는 별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 점 하나는 별을 만들 수 없지만 점 다섯개만 있어도, 5명만 있어도 별은 그릴 수 있다. 별이 만들어지는 관계도, 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의 배치도. 너도 반짝이고 나도 반짝이고 우리가 반짝이는, 그래서 지상에서 하늘로 떠오르는 존재가 될 수 있는 별의 배치도. 나라는 점 하나는 점 하나로 끝날 수 있다. 바닷가의 모래처럼 수많은 점들 중 하나. 또 별을 그리는 잇는 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우리가 지상에서 천상의 존재가 될 수 있는 방법, 별을 그리는 순간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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