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보다 작은 형태로서의 글쓰기
오늘은 눈이 더 많이 내린다. 침대에서 빠져나와 창가로 가니 뒷마당의 나뭇가지들이 하얗게 변해 가고 있다. 당신은 예순세살이다.
소년 시절부터 여태까지의 기나긴 여정 동안 당신이 사랑에 빠져 있지 않은 때는 거의 한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 30년간의 결혼 생활도 그렇지만 그전의 30년 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사랑의 열병과 한눈에 반하는 설렘을 겪고 얼마나 열정에 불타 상대를 쫓아다녔으며, 제정신을 잃고 미친 듯이 욕망에 휩쓸린 것은 또 몇 번인가?
기억하는 삶의 첫 순간부터 당신은 에로스의 열렬한 노예였다. … 생김새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내면의 빛, 유일무이한 불꽃, 밖으로 표출되는 자아의 불길이었다. … 당신의 흉터들 중에서도 특히 얼굴에 난 것은 ….
거의 무일푼으로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기운이 났다. 글을 쓸 수 있는 한 어디에서 어떻게 살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당신이 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걸을 필요가 있다. 걷다보면 단어들이 떠오르고, 머릿속에서 그것들을 쓰면서 단어들의 리듬을 들을 수 있다.
한 발 앞으로, 다른 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심장이 이중으로 두근두근 뛴다. 두 개의 눈, 두 개의 귀, 두 개의 팔, 두 개의 발. 이것 다음에 저것, 저것 다음에 또 이것. 글쓰기는 육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몸의 음악이다. 단어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글쓰기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단어들의 음악은 의미가 시작하는 곳이다. 당신은 단어들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지만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걷고 있다. 언제나 걷고 있다. 당신이 듣고 있는 것은 당신의 심장의 리듬, 심장의 박동이다. 만델스탐은 이렇게 말한다. “단테가 신곡을 쓰면서 닳아 없앤 신발이 몇 켤레일지 궁금하다.”
춤보다 작은 형태로서의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