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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Apr 11. 2023

외식의 기억 50%

사진에 담고 싶은 장면

어머니는 최고의 요리사


어머니가 처음 외식을 한 것은

결혼 25주년 기념일에

패터슨시의 이태리 식당에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 외식은 결혼 50주년 기념일에

와이코프시에 있는 '쇠주전자의 집'이라는 식당이었다.


"내가 이 음식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어." 라고

어머니는 말했지만

나는 어머니가 행복해한다는 걸 알았다.

비록 인정하진 않으셨겠지만.

.....

- 마리아 마치오티 길란


최근에 엄마와 외식을 한 건 열흘 전쯤, 내가 일 들어가기 전이었고 엄마도 매일 나가는 일이 쉬는 날이었다. 엄마는 병원을 가자고 했다. 어제는 아버지와 함께 유방에 있는 멍울 때문에 정기적으로 가는 병원에 가셨고 오늘은 자궁 검진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또 혼자서 하는 심각해지는 버릇이 도지셨다. 자궁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면서 엄마는 초조해 했다. 엄마는 조금만 몸이 불편하면 모든 단계를 건너뛰고 암을 짐작하신다. 그 무시무시한 단어를 참 쉽게도 곁에 두고 계신다. 의사 선생님의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엄마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건가?' 하고 가슴이 벌렁댔지만 여성 호르몬이 줄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휴~


병원에서 나오자 엄마는 순대국밥을 먹자고 하셨다.

"매울텐데 괜찮아?"

위 시술을 한 엄마는 자극적인 음식을 피했다.

"한 번씩 그 집 순대국밥이 먹고 싶어."

외식은 늘 필요였던 엄마, 가족 누구의 생일이니까, 일하다가 아버지가 지치셨을까봐 맛있는 걸 먹이고 싶으시다거나 나랑 병원을 다니러 가는 날에 하던 외식이 전부. 그래서 엄마는 늘 부엌을 떠날 수 없었다.


사람이 많은 순대국밥집에서 엄마는 암뽕 순대국밥을 시키셨다. 나는 찰순대만 있는 순대국밥을 시켰다. 어느새 이 식당도 사람 대신 테이블에 있는 기계가 주문을 대신했다. 엄마는 신기하기도 하고 알아놔야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자꾸 물었다.

"어떻게 하는 거래?"

"이렇게?"

"여기서 그 다음은?"

무딘 엄마의 손가락이 투박하게 화면을 꾹꾹 눌러보고 올려보고 내려보면서 음식을 기다렸다. 순대국밥이 나오자 엄마는 부추를 넣고 들깨가루를 잔뜩 넣고 셀프바에서 가져온 부추를 내 뚝배기에 한아름 올려주고 엄마 뚝배기에도 한아름 올렸다.

엄마는 내장들을 새우젓에 찍어 맛있게 먹었다. 밥 한 그릇도 뚝배기 안에 다 말아서 숟가락을 호호~ 불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일단 숟가락 가득 퍼서 한번에 반을 먹고 1초 뒤 다시 반을 먹는다.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만의 드시는 방법이다. 음식을 식혀서 먹으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때의 골든 타임 안에 드셔야 한다.  엄마에게 식어버린 음식은 음식이 아니다.


말도 없이 먹던 엄마가 일어서서 셀프바에 있는 깍두기를 다시 가져왔다. 정말 맛있으신가보다. 밥을 남긴 내가 숟가락을 놓고 나서도 엄마는 뚝배기를 기우뚱하게 걸쳐서 국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드셨다.

"배 고팠어?"

"아니, 맛있네."

그러고 보니 1월에 동생네와 놀러갔던 휴양림에서 동생이 해 준 닭도리탕이 너무 맛있다며 두 그릇이나 드셨던 엄마,  또? 또?

엄마가 음식을 하는 장면이 95%, 엄마가 맛있게 드신 장면이 5%. 기억이 너무 불균형적이다. 엄마의 인생도 그만큼 불균형적이었겠지.


 먹음직스럽게 익은 감을 보고도 가져다드릴 어머니가 없어서 아쉽다는 내용의 고전 시가가 떠오른다. 엄마를 모시고 외식을 하고 싶다. 정신을 쏙 빼놓는 아이들 빼고서 오붓하게. 순대국밥집으로, 베트남 샤브샤브집으로, 오리집으로, 돌솥밥집으로, 매운탕집으로.... 맛있게 드시는 장면을 50%까지는 올려서 균형을 잡고 싶다. 드실때마다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봐도 좋겠다. 시간이 충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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