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부러워하는 스페인의 시에스타 문화, 현실은 다르다.
최근에 스페인에 방문한 한국분들과 스페인의 문화에 대해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들이 가장 부러워하던 스페인의 문화는 시에스타(Siesta)였다.
"스페인에서는 낮에 일 하던 도중에 시에스타를 한더라구? 그래서 그런지 상점들이 전부 2-4시 되면 문을 닫어. 이런 여유 넘치는 문화 너무 부러워."
시에스타, 쉽게 말해 낮잠을 자는 전통적인 스페인의 문화는, 넷플릭스 시리즈 더글로리에서 전재준이 운영하던 편집샵의 이름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낮에 연진과 함께 시간을 즐기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시에스타라는 의미를 지었다고 한다. 낮잠이면 낮잠이지 왜 굳이 시에스타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스페인뿐만 아니라 그리스나 이탈리아, 남미 국가 같은 열대 지방 국가들은 햇볕을 피하기 위해 더 이른 시간에 일을 시작하고 가장 더울 때 휴식을 취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나도 스페인에 세금을 내고 노동법을 준수해야 하는 한 시민으로서 실제로 사람들이 여유로운 시에스타를 즐기는지 궁금했다. 내 계약서에는 전혀 시에스타와 관련된 조약은 없었기 때문에 아마 암묵적으로 즐기거나 다른 회사의 계약에는 시에스타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스페인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시에스타를 즐기는지 물어보았다. 모든 대답은 "아니요"였다. 그럼 우리가 부러워하던 시에스타는 어디 있는 건가?
최근 남유럽의 경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다. 실제로 거주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이지만 젊은 스페인 혹은 남미 친구들의 스페인 삶은 혹독하다. 많은 사람들이 월 200만 원 이상을 제대로 벌지 못하고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와 같은 대도시의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없다. 특히 오버투어리즘으로 집세는 더더욱 높아지니 실제 거주민들은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지다 보니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투잡 쓰리잡까지 뛰는 젊은 친구들도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에스타는 마치 사치와 같은 것이다. 오히려 시에스타를 즐길 바에 더 빨리 퇴근하는 것을 선호한다. 오후 2-4시에 상점이나 식당이 문을 닫는 것도 사실은 점심시간에 더 가깝다.
본래 스페인의 시에스타는 전통적인 농업사회와도 관련이 있다. 스페인 영토의 약 40% 정도가 농업으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올리브나 포도와 같은 작물을 주로 생산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구의 약 80%가 전체 영토 15%에 살고 있고 우리 한국과 비슷하게 인구 집중현상을 겪고 있다. 젊은 층들은 일을 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로 더 몰리고 있고 심각한 실업난, 경제난을 겪는 상황에서 시에스타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문화가 되고 있다.
열정의 나라, 자유, 여유로움의 키워드를 지녔던 스페인도 변하고 있고 더 이상 예전의 잘 나가던 스페인이 아니다. 친구들과 주말에 놀러 나가기 전에 에너지를 회복시키기 위해 잠깐 눈을 붙이곤 한다. 그런데 우린 시에스타라고 부르기 보단 그냥 낮잠이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