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일기 2

39주 0일

by 여행하는 과학쌤

무통 주사의 효과가 돌자 통증이 0으로 줄었다. 고통이 끝났단 사실에 마냥 좋아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궁 수축 자체가 멈췄던 것이었다.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 60-70 정도로 치솟았던 수축 그래프가 무통 주사를 맞은 후에는 10 이하로 떨어졌다. 출산이 처음이니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턱이 없었다.


충분히 버티다 병원에 간 덕분에 몇 시간 내로 아이가 나올 것 같다고 했었는데, 통 주사를 맞은 후로 진행이 느려졌다. 자궁문이 6cm에서 더 이상 열리지 않았고, 태아의 심박수가 잠깐 떨어진 것이 잡혀서 새벽 5시쯤 무통 주사액을 제거했다. 초음파로 아이 상태를 확인하니, 얼굴이 하늘을 보고 있는 자세라 난산이 예상된다고 했다. 그때 실제로 태아의 심박수가 떨어졌던 것인지 태아가 움직이면서 기계에 모의 심박수가 잘못 잡혔던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아무튼 무통 주사를 제거하자 마취 효과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자궁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 자궁 수축에 맞추어 힘을 주자 수축 강도가 차츰 강해졌, 점점 견디기 힘든 정도로 통증이 몰려왔다. 이쯤 되었으면 끝이 보여야 했는데 의료진들은 계속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자궁문은 다 열렸지만 아이 머리가 내려오지 않아서 아직도 멀었단다. 게다가 아이 얼굴이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는데다 골반이 좁아서, 더 기다려도 수술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임신 기간 내내, 그리고 병원 도착 후까지도 자연분만을 잘 할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요가, 필라테스, 폴댄스 을 꾸준하게 해서 복부와 회음부 근육에 힘 주는 법을 잘 알았다. 20년 넘게 생리통에 시달리느라 자궁 통증에도 익숙했다. 무통 주사만 맞으면 적절히 고통을 참으며 순풍 낳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궁문이 다 열린 순간 무통 주사 없이 생으로 진통을 겪을 거라곤 상상치 못 했다. 거의 다 끝나간다고, 몇 번만 더 힘 주면 된다고, 그런 격려와 함께였다면, 생진통도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텼을지 모른다. 그런데 아직 멀었다고? 언제까지 이 고통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고? 심지어 아이가 끝내 얼굴 방향을 돌리지 않으면 모두 위험하다고? 결국은 수술할 가능성이 크다고?


오전 8시, 전날 새벽부터 24시간 넘게 한숨도 못 잔 상태로 결국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비급여 항목을 선택하라는데 수술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터라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페인버스터, 유착방지제, 네오덤실 등을 미리 공부해 갔어야 했던 것이다. 남편이 네오덤실을 뺀 나머지 두 항목을 선택했고, 나는 정신이 없는 상태로 대충 수긍을 했다.


수술실이 준비되는 동안에도 통증은 꾸준히 강해졌다. 진통이 올 때엔 몸이 꼬이고 비명이 나왔고, 진통이 지나간 후에도 팔다리가 저절로 딱딱딱딱 떨렸다. 수술실로 옮겨간 후 척추에 새로운 마취관을 꽂자 다리가 저릿해지면서 몸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통증은 사라졌지만 더는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아이를 안 봐도 되니 즉시 재워달라고 했다. 드디어 모든 감각에서 해방되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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