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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in Lowland May 05. 2020

녹색 창가의 고양이

네덜란드, 도시의 동물들 (2)


네덜란드 도시의 일반적인 주택가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집집마다 커다란 창문이 인도 바로 옆으로 난 것을 보았을 것이다. 밖에 있는 내가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민망할 정도로 집 안 구석구석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물론 보인다고 해서 빤히 쳐다보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만, 프라이버시 존중에 한국 보다 훨씬 민감한 것 같으면서도 어떨때는 황당하게 대범한 네덜란드의 면모가 보인다. 커튼을 친 집이 몇 년 전 보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창문을 통해 거실 전체의 인테리어가 보이는 집이 많다. 걷다 보면 시선이 자연스레 집 안으로 향하고, 그럴때마다 내가 쁘띠 스토커(?)가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 창문 덕분에 사실 좀 즐겁기도 하다. 바로 고양이들 때문이다.


집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다보면 집집마다 창가에 개나 고양이가 앉아있는 것을 굉장히 자주 본다. 네덜란드 가옥 건축 특성상 창문 밑에 길고 넓은 선반과 라디에이터가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햇빛이 비치고 따끈한 공기도 나오는 창가 자리는 동물들에게 그야말로 명당이다. 앉은 모양새도 천태만상이다. 사람의 눈길이 느껴지자마자 소스라치게 경계하는 고양이나, '보던지 말던지 알아서 하슈' 하고 하품을 하며 늘어지는 고양이, 혹은 몸에 상처가 났는지 커다란 콘을 머리에 쓰고 의기소침해 있는 강아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허공을 빤히 쳐다보는 고양이, 창문에 몸을 꼭 붙이고 희한한 요가 자세로 잠이 든 고양이, 뭐가 그리 맘에 안드는지 아르릉거리는 강아지. 


네덜란드 집들의 창문 옆을 걷다 보면 귀여운 털뭉치들이 제 삶의 작은 한 자락을 나에게 내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음이 외로울땐 특히나 많은 위로가 되었다. 얇은 창문을 사이에 둔 채, 편견 없이 나를 '낯선 동물 1'로 봐주는 공평함이 느껴진다.


Kleine  Kantje's daily grooming, illustration by Min van der Plus, 2020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양이가 있다.

녹색 선반에 플라스틱 블라인드를 친 집의 새침한 작은 고양이. 네덜란드 고양이 답지 않게 몸집이 조그맣고 눈매가 새초롬하게 위로 올라간 회갈색 줄무늬 고양이 였다. 출근길에 서둘러 걷다가도 이 고양이가 보이면 반드시 작게 눈인사를 해주었다. 칸트 처럼 같은 시간에 항상 털을 핥는 부지런한 고양이라 '클라이네 칸쳬' (Kleine Kantje, 작은 칸트) 라고 내 마음대로 이름을 붙였다. 내가 쳐다보면 어김없이 '뭘 봐?' 라는 거만한 눈빛을 쏘는 것이 너무 귀여웠다. 집 안이 블라인드로 촘촘히 가려진 것이 천만 다행이다. 내 음흉한 미소를 집 주인이 봤다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그렇게 일방적인 팬심으로 칸쳬와 아침 눈도장을 찍으며 몇 달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저녁 퇴근길에 칸쳬의 녹색 창가를 지나치는데 평소와 다르게 두 덩이의 실루엣이 보여 눈이 번쩍 뜨였다. 


칸쳬 에게 형제가 있었던 것이다!


Two identical cats, photo by Min van der Plus, 2020



'어디 한번 누가 누군지 맞춰보라옹.' 

나는 프레드 & 조지 위즐리에게 농락당한 기분이 되었다. 아침마다 그루밍을 하던 작은 칸쳬의 눈매를 그렇게 자주 마주보았는데도 도무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혹시 아침마다 그루밍을 돌아가면서 하던 거였을까? 내가 '칸쳬 너무 귀여워 세상에서 제일 예뻐' 라고 마음 속으로 주접을 떨었지만 알고보니 얼굴 특징도 제대로 분간 못하고 호들갑을 떤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은 저 두 고양이만 알고 있을 것이다. 두 마리가 되니 두 배로 귀여운 저 고양이들이.


내 민망함 따위 당연히 알 바 없는 두 작은 칸쳬들은 싱크로나이즈 수영을 하듯이 똑같은 포즈로 기지개를 펴고서, 블라인드 너머로 사라졌다. 


그 뒤로는 아침마다 칸쳬를 볼 때 칸쳬 1 인지 칸쳬 2 인지 구분해보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 바로 터진 코로나 사태 때문에 당분간은 집안에 콕 박힌 신세라 두 마리의 칸쳬들을 두 달째 만나지 못했다. 인간사야 어쨌든, 칸쳬 두 마리는 아침마다 계속 창가에서 일광욕을 하며 그루밍을 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네덜란드 도시의 창가에 앉은 고양이들의 사진을 몇 점 공개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한다.

어떤 나라, 어떤 장소에서도 고양이는 귀엽다.



Cat by the window 1, photo by Min van der Plus, 2019
Cat by the window 2, photo by Min van der Plus, 2019.
Cat by the window 3, photo by Min van der Plu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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