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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in Lowland May 15. 2020

시거나 달거나, 하나만 하면 안될까요?

네덜란드의 유제품(2)- Karnemelk 와 Vla


네덜란드 유제품을 이야기할때 빠트리고 싶지 않은 것 두 가지가 있다. 

카르네멜크Karnemelk 와 블라Vla, 네덜란드 고유의 유제품을 꼽으라면 빼놓을 수 없는 제품들이다.



Little Cow in DelftsBlauwe, illustration by Min van der Plus, 2020.




카르네멜크 Karnemelk를 처음 샀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그 당시 3개월 간 서블렛으로 구한 임시 숙소에서 살고 있었다. 친절한 두 명의 다른 하우스메이트와 살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집의 위생 상태는 하우스메이트들 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임시로 사는 입장에서 원주민(?)들에게 집이 얼마나 더러운지 지적하기 괜히 미안했던 나는, 입을 다무는 대신 그곳에서 일절 요리를 하지 않고 살았다. 특히 세 사람이 공용으로 쓰는 아주 작고 오래된 냉장고는 음식을 넣어두기 못미더운 모양새라, 나는 집에서는 물과 과일정도만 먹고 살았다. 


그 집에 산지 2주쯤 될 무렵, 나는 우유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네덜란드는 낙농국의 우두머리 급인 나라니까. 우유는 굉장히 신선하고 맛있겠지? 그런 기대로 슈퍼에서 사온 것이 카르네멜크 였다. 멜크가 우유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카르네멜크는 왠지 어감이 ‘더욱 고소하게’ 들렸다. 엑스트라 리치 뭐 이런거 아닐까 라는 제멋대로인 기대를 하면서 사왔던 카르네멜크. 다음날이 주말이었기에 나는 주말 아침의 즐거운 이벤트 삼아 우유를 마시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우유를 마셨을때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발효가 된 듯한 시큼한 맛의 걸쭉한 우유가 아닌가. ‘우유가 상했어!’ 나는 냉장고가 드디어 맛이 갔다 확신하고 하우스메이트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그녀들은 내가 상했다고 확신한 그 우유를 마시고선 어깨를 으쓱 할 뿐이었다. 


"뭐가 문제야?" 


"맛이 시큼하잖아, 상했어. 냉장고 바꾸자!"


"민, 이건 카르네멜크잖아. 원래 이런 맛이야."


내 더치 하우스메이트 들은 내가 카르네멜크에 놀란 것을 오히려 놀라워하며 영어 번역기를 돌려주었다. 

하지만 번역 결과는 나를 더욱 혼란에 빠트렸다. 


“버터밀크?”


버터밀크를 마신다고? 그냥? 버터밀크는 스콘이나 비스킷을 베이킹할때 쓰는 재료 아닌가? 

그제서야 신 맛이 이해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경험상 베이킹 재료로 카테고라이징 된 제품을 이 나라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마신다는 것에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하우스메이트들 역시 나름 구글링을 해보더니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버터밀크를 그냥 마시진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내 경악의 근원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세상은 넓고, 누군가는 버터밀크를 마신다.

삶을 사는데 중요하진 않지만 나름 재미있는 사실을 모두가 배운 주말 아침이었다.





Karnemelk, photo by Min van der Plus, 2020.


버터밀크는 쉽게 말해 버터를 만들기 위한 지방을 모두 다 빼고 남은 우유물 같은 것이다. 거기다 발효가 약간 되었기 때문에 신 맛이 난다. 버터밀크를 베이킹 재료가 아니라 그냥 우유 마시듯 대하는 나라는 주로 독어권 나라들이라고 들었다. 그냥 마시기도 하고, 단 시럽을 섞어서 마시기도 한다. 남편 M 역시 어렸을때 종종 마셨다고 한다.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다. 다행히도!)


한 영국인 왈 ‘카르네멜크를 마신다는 점이야말로 네덜란드인들의 청교도적 자기 학대를 대변한다’는 것을 들었다. 80% 쯤 동의하며, 저 영국인에게 동지애마저 느낀다. 그리고 한가지 더. 카르네멜크의 신 맛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이 나라의 과일 맛 우유들은 99% 다 신 맛이다. 나는 이것이 굉장히 불만스럽다. 네덜란드 유제품 회사 CEO들이 이 글을 읽을리는 없지만 어쨌든 내 불만을 토로해본다.


" 나는 우유에서 요거트 맛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신 맛 유제품이 먹고 싶으면 알아서 드링킹 요거트를 사먹고싶다. 왜 바나나 맛 우유, 딸기 맛 우유라고 잔뜩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단 맛이 아닌 신 맛을 만들어놓는가. 나는 오렌지맛이나 키위맛 우유같은 것은 먹고싶지 않다. 그런건 너나 집에서 만들어 먹고 불쌍한 대중들에겐 좀 더 다양한 선택권을 달라. 나는 네덜란드의 유제품 회사들은 과일 우유를 다르게 만들기를 바란다. 제발."


(아주 최근 드디어, 7년만에, 단 맛이 나는 딸기 우유를 찾고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Vla, photo by Min van der Plus, 2020.



반면 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히 소개하고픈 유제품도 있다. 바로 블라 Vla. 

이름부터 러블리하지 않은가?


한국이나 일본에서 인기 있는 커스터드 푸딩이 굉장히 묽어진 듯한, 드링킹 가능한 크림이 바로 블라다. 예쁜 통에 담긴 푸딩을 상상하지 마시라. 블라는 우유와 똑같은 모양의 종이팩 혹은 유리병에 담겨있는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이게 디저트라는 생각은 못했다. 한번 먹고 난 후부터 나는 카르네멜크로 잠시 잃었던 네덜란드인들에 대한 리스펙을 되찾았다. 과대 포장을 줄이고 소탈하게 우유팩에 꽉꽉 담긴 성스러운 디저트, 그것이 블라다.

살이 찔까봐 자주 먹지는 못하지만, 한 달에 한번 쯤은 블라가 생각이 난다.


가장 인기있는 맛의 블라를 가지고 싸우는 네덜란드 인들이 있다. 바나나, 딸기, 산딸기, 카라멜, 오렌지 등등 여러 맛이 있지만 블라의 양대산맥은 바닐라와 초코다. 그리고 어떤 어진 천재가 네덜란드인들이 양분되어 싸우는 것을 어여삐 여기었는지, 바닐라+초코 믹스를 개발했다. 이렇게 두 가지 맛이 합해진 제품은 dubbelvla 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림버그 지방에는 블라이 Vlaai 라고 부르는 파이/케익이 있는데, 림버그 사투리로는 블라이를 블라 라고 부른다.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지  림버그 출신인 남편 M에게 물어보니 ‘디저트는 그냥 다 푸딩이니까 vla라고 불러도 돼’ 라고 매우 당당하고 헷갈리는 말을 한다. 외국인인 나에겐 영양가 없는 대답이다. 영국에서 디저트를 '푸딩'이라고 부르는게 블라로 번역되어서 그런건가 싶지만, 이것도 내 추측일 뿐이다. 


100년전과 비교해보자면 각 나라간의 교류도 비교할 수 없이 늘었고, 이제 다른 점 보다는 비슷한 점을 찾는 것이 더 많아진 세계화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지구상엔 경험해보지 못하면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것은 때로는 거대한 건축물이기도 하고, 때로는 슈퍼 한 모퉁이의 유제품들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엔 아직도 내가 맛보지 못한 유제품이 너무나 많아서 매일 매일이 작은 모험과도 같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슈퍼에서 새로 발견한 '피스타치오&코코넛 밀크'가 냉장고에서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설레게 만든다. 부디 이번 우유는, 신 맛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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