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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글빛백작 Mar 26. 2024

쓰는 삶을 만난 덕분이다

어머니 수술을 앞두고

전화기가 매번 부서졌다. 유리창도 깨졌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자주 다투셨기 때문이다. 나는, 유독 학교를 좋아했고 학교에서 늦게 귀가했으며 공부만 했었다. 공부만이 독립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지역을 벗어나 멀리 진학하기를. 농촌에서 학원 없이 교대 갔으니까 공부 부분은 증명된 셈이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친정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 대학생이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각자 나에게 전화해서 속상한 마음을 전달하셨다. 그럴 때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다투셨던 장면이 떠올랐다. 쉽게 우울해졌다. 겉으로는 활기차게 생활하는 것 같아도 전화만 울리면 불안해졌다. 지금도 내 전화는 무음이다. 


마음으로부터 일찌감치 독립했다.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로 대학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조금씩 주시긴 했지만 늘 부족했다. 취업을 한 후에도 부모님의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완전한 독립을 꿈꿨고 스물다섯에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부모님 싸운다는 소식이 들리면, 멀리 있는 내가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친정에 사고라도 터질까 봐. 

어머니 혼자 손녀들 보기 위해 우리 집에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 두 분이 오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싸우셨다. 하루는 내가 소리쳤다. 내 집에서는 큰소리 내지  말라고. 애들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고. 그때 두 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10년 전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무릎부터 문제가 생기더니 심근경색 두 번, 암 수술 세 번을 하게 되었다. 학기 중 연가를 쓸 수 없었던 내가 아버지 처음으로 암 수술하는 날 병원 수술실 앞에서 대기했었다. 지금 아버지는 암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기억력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며칠 전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미리 말하지 않으시다가 수술 날짜 일주일 남기고 연락 왔다. 수술을 해야 하니 누구라도 한 명이 병원에 오라는 거다. 초기이긴 하지만 유방암 수술이라고 했다. 최소 일주일간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 식사를 염려하셨다. 올케는 자식들 있는 곳에 와서 수술하면 좋았을 텐데 하며 마음을 많이 썼으나 나는 무덤덤해졌다. 오늘 당장 해내야 하는 일이 있는 터라 수술 생각은 임박해서 고민하고 싶었다. 걱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으나 기분은 가라앉았다. 


나이 들고 병드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는 거 아버지가 병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지켜봤었다. 어머니가 수술하게 되니 어머니의 삶이 고단하기만 한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 와중에 연가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대도시 운전이 능숙하고 지금 일을 하지 않는 남편이 어머니 수술 날에 가기로 했다. 딸 셋도 챙겨야 하니 나까지 올 필요는 없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올케와 동생은 주중에 아버지 식사를 챙기러 가보는 걸로 의논은 다 되었다. 


그럼에도 암 수술을 하는 상황에 내 일상을 지켜내고 있는 내가 과연 정상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당장 할 일이 천지다. 학기 초에 담임 없는 1학년 교실은 상상하기 어렵다. 감정보다 이성이 강한지 이번에 알았다. 연가를 쓰지 않기로 했다. 다음 주에 있을 일정도 취소나 연기한 것 없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이 내용은 책에 한두 마디 언급한 것 같다. 책 쓴 덕분에, 삶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에 현재 내 삶을 꿋꿋하게 이어가고 있다. 

어머니가 정기검진을 잘 챙긴 덕분에 암을 발견했다. 갑작스럽게 알게 된 병이지만 이 또한 다행이다. 어머니는 나보다 더 담담하다. 나의 모습이 어머니한테 온 건가 싶을 정도다. 수술 전 날 남편이 올라간다고 했더니 수술 당일에 오라고 한다. (그래도 미리 가야겠지.)

남편이 일이 바쁜 사람이었다면 내가 연가를 여러 날 내야 했을 터다. 그리고 세 딸들 챙기는 문제도 만만치 않았겠지. 지금 남편이 공부방 운영을 하고 있지 않아서 우선 병원에 머물 수 있다. 적극적으로 처가 일에 나서준 덕분에 나의 신학기 업무나 작가/라이팅 코치 일도 놓치지 않고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쉽게, 편안하게 지내본 적 없는 것 같다. 매주 새롭게 일이 생겨났다. 인생을 길게 보면 최근 가라앉아 있는 내 상황이 큰일은 아닐 것 같다. 내 삶을 글로 쓰는 작가이기에 일상을 유지하는 비결을 배우는 중이다.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오늘 해야 할 일만 챙긴다. (참고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걱정해 주는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이런 말 들으면 마음이 무너질 것 같다.)  내 글과 삶이 나를 지켜주니까. 내 스스로 이겨내보려고 한다. 다행이다. 쓰는 삶을 만나서. 



https://blog.naver.com/giantbaekjak/22337625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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